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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May 03. 2023

"안아줄까요?"

손석구가 아니라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오이소박이 같았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오이소박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난다. 비실비실 느끼하고 맛없는 사람들 속에서 만난 오이소박이 같은 사람은 얼굴만 봐도 상큼하고 기운이 돋는다. 입맛이 돌아서 밥을 몇 그릇씩 먹게 해주는 힘을 준다. 여름날의 오이소박이 같았다. 찬밥에 물을 말아먹어도 너만 있다면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내일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독서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아기띠를 하고 책을 읽겠다고 나온 모습이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애만 키우는 게 아니라 혼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득바득 애쓰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살고 있었다. 좀... 안아주고 싶었다. 그랬지만 초면에

"안아줄까요?"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석구도 아니고 그쪽에서 됐다고 하면 민망할 것 같아서 마음으로 안아줬다. 다음에는 꼭 안아주리라 마음만 먹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녀는 우리 집 문 앞에 뭘 자꾸 걸어두고 갔다. 둘째 돌이라며 떡을 걸어줬고, 시골에서 온 채소를 걸어두고 갔다. 현관문에 걸린 비닐봉지를 보며 그녀도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애쓰는 내가, 아등바등 사는 내가 그녀도 안아주고 싶었겠지. 우리는 서로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작아진 아이옷과 신발을 걸어두고 떡과 채소를 걸어두며 살았다.

슬세권에 작가님이 살아서 영광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작가인 나보다 더 바쁘다. 슬리퍼를 신고 만나기도 어려울 만큼 시간내기 어려운 건 그녀 쪽이다. 그래서 아직 안아주지 못하고 있다.


오이소박이 같은 사람들이 있다. 내 옆에 붙어 앉아서 잘한다, 멋지다, 건강해라 해주며 안아준다. 그들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나는 45살에 조금 알겠다. 오이소박이 같은 사람들이 나를 살리고 있다. 비싼 한우 등심에도 고급 캐비어에도 꿀리지 않는다. 시골에서 올라온 오이를 걸어두고 간 그녀가 안아줘서 좋았다. 마음을 걸어두고 간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바쁘고 우리는 아직 그 정도로 친하지는 않다. 그녀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으니 오이소박이를 만들고 글을 만들어 그녀를 안아준다. 찬밥에 물을 말아먹던 내게 오이소박이가 와서 안아줬다. 오래 안고 싶지만 그녀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 짐짓 이제 괜찮은 척하며 오이소박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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