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나

처음이지만 낯설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by 김한우리


22살에 시집와 젊음의 청춘도 없이 어린 나이에 나를 키우셨다. 내가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다면 엄마는 조금이라도 청춘을 청춘답게 보낼 수 있었을까?결혼과 동시에 시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고 시월드 입성까지 이거야말로 40년 전 엄마도 엄마가 처음였을텐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나를 어찌 키우셨을까?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나의 심장이 고장 난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날따라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들어보자고 하셨다고 한다. 한참 듣고 난 후 엄마에게 요즘 아이가 보채거나 모유나 이유식을 잘 먹지 않냐며 물으셨다.
순간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의사가 아니고 점쟁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아이, 심장 소리가 안 좋아요. 아기 입술 파란 거 보이시죠?"
엄마는 그제야 의사 선생님이 점쟁이가 아니라 청색증으로 내 심장이 안 좋다는 걸 아신 거다.


밤낮으로 울고 보채는 나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는 예방접종도 할 겸 아이가 울고 보채는 이유를 알고 싶었고 그러려면 병원을 가봐야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달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난 선천성 심장병이란 진단을 받고 치료도 받고 수술도 받고 삶의 끈을 붙잡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그때 날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괜찮겠지?' 하고 그 수고로움을 미뤘으면 난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엄마의 판단이 나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려주신 거나 마찬가지이다.


엄마란 우주 안에서 난 따뜻한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엄마란 존재보다 여자로서 존경하고 본받을 점이 많기에 나에게 엄마는 우주만큼 큰 사람이다.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대한민국 K-장녀이다.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엄마는 집안에 살림밑천이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5남매를 키우는 건 어려웠다고 하니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하니 일을 나가는 엄마 옆에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동생들을 보면서 엄마는 성공해서 공부의 꿈을 놓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내가 태어나 나를 보살피느냐 공부의 꿈은 조금씩 늦어졌지만 엄마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꿈이 간절해서 포기하지 않아서 엄마는 꿈을 이루게 됐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는 직장을 다니시며 주경야독으로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더니 한 번에 합격을 하셨다. 그리고 이듬해 대학교까지 입학하시고 졸업하셔서 하지 못했던 공부를 원 없이 하셨다고 한다.

최종 목표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싶었지만 그 무렵 나에게 이벤트가 찾아와 두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기에 엄마는 다시 또 자신의 삶을 나에게 양보하셨다.


흥 많고 재주가 많은 엄마는 그 모든 걸 포기하면서 나를 살리기 위해 더 억척스러워야 했고 더 강해져야 했기에 엄마의 삶은 더 치열했던 게 아닌가 싶다. 환갑이 넘으신 엄마는 정년퇴직을 하시고 취미생활로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계신다. 엄마이자 여자로서 존경하는 점은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신다는 거다. 늘 매일 아침 자전거를 2시간 정도 타시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계신다. 환갑이 넘었다고 해서 늦은 게 아니라 언제든지 삶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엄마를 통해서 더욱더 알게 된다. 운동과 담을 쌓은 나와 달리 엄마는 매사에 부지런하시다. 난 그 모습이 참 좋다. 이제 본인의 삶을 사시니깐 말이다. 나에게 이벤트가 오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으면 여자의 삶에서 엄마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또 나를 보살펴주시는 엄마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고 우리 가족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비빔냉면을 좋아하는 엄마. 오리고기 못 먹는 엄마는 아빠를 위해 오리 고기 반찬을 해주실 때, 행여 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모든 일 STOP하시고 큰 딸을 보살펴주는 엄마, 늦게 낳은 막내딸을 위해 더 젊게 사시려고 자기 관리를 하시는 엄마. 우리 집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다.

난 아직 엄마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으며 엄마 무릎을 베고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마흔 살 오리지널 캥거루족이다. 그래도 난 엄마품이 아직 좋다. 홀로서기를 할 때 비로소 내가 정말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난 내 일을 하면서 나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캥거루족여도 나름 내 밥값은 하면서 살고 있으니 나름 당당하다.!! 하하하하하.
(멀리서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제발 시집 좀 가라". 난 얘기한다. "싫다고우우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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