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아빠의 편지가 되살아났다.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아빠의 편지
2004년 8월 두 번째 심장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여름이라 몹시 더웠고 내가 있던 다인실은 환자 및 보호자가 뒤엉켜 북적이는 날이었다. 내가 첫 번째 수술을 할 당시 나이는 만 6살이었다. 그때 이후로 두 번째 수술이기에 어쩌면 나에게 첫 번째와도 같은 수술이었다. 기억 저편에 6살 때 수술은 내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 말로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후부터 난 병실 안에 탑이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어대는 바람에 엄마는 가시방석였다고 하니 내가 울기라도 하면 병실 안에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바빴다고 한다. 어릴 때 많이 울어서 그런가? 성인 되고 나서는 눈물을 쏟을 일이 없는 건지 감정이 메말랐는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17년 만의 수술대 위에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난 대학교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수술이라 우리 가족은 긴장 속에 수술 준비를 했다. 그때 부모님은 왕성하게 사회생활로 바쁜 시기였고 내 동생은 4살 무렵이었다.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도 부모님은 날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다. 여름휴가를 모두 반납하고 4살 동생은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번갈아 보살피면서 모두 나를 위해 애써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수술 하루 앞두고 아빠는 나에게 병원 주소를 물어보셨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병실 주소까지 디테일하게 적어드린 거 같다.
다음날 수술실 앞에서 난 펑펑 울었다. 이동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나를 엄마는 울지 말라며 눈물을 연신 닦아 주셨다. 그리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가방 안에 편지가 있다고’ 전날 밤 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적는 것처럼 나름 진지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때 그 감정은 지하 100층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좌절감이 쏟살 같이 밀려왔다. 전날 교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때의 교수님 눈빛은 지금도 정말 잊을 수 없다. 교수님을 믿고 수술대 위에 오른 난 유서를 가방 안에 넣고 수술을 받았다. 장장 13시간 수술 후 중환자실 집중치료실에 혼자 있게 되었고 마취가 아직 덜 풀려서 멀쩡한 정신들이 퍼즐 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하나로 모으기까지 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만약 의료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부터 17년 만에 만난 아빠의 편지는 따뜻하고 포근함 그 자체로 나를 반겼다.
책상 서랍 정리를 하던 중 그동안 내가 받아온 편지를 보관하는 상자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편지를 모셔둔(?) 나만의 타임캡슐 상자가 있다. 그 박스를 열어 보는 순간 요술램프 지니처럼 펑~하고 편지들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흩어진 편지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친구한테 받은 편지, 초등학교 때 받은 편지 삐뚤삐뚤 친구들이 써준 편지가 나를 반겨줬다. 정리가 끝날 무렵 편지지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아빠의 글씨체였다. 받는 사람은 oo병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편지지를 열어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년 전의 아빠가 병원으로 보낸 편지였다. 그 순간 난 얼음이 되었다. 누가 '땡'을 해줘야 내가 움직일 수 있는데 '땡'을 해줘도 얼음이 돼버렸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빼곡히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며 아빠는 날 위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셨을까? 아빠의 편지는 그날의 공기와 추억들로 내 방 가득 차 버렸다.
내가 심장이 아프게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잘못도 아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내 인생이 불행하거나 불쌍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심장이 조금 불편할 뿐 절대 다르지 않다는 걸 부모님을 통해 난 배웠다.
'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야. 남들보다 심장이 약해서 달리기를 잘 못 뛰는 것뿐 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야.'라고 항상 말씀을 하셨다. 그렇기에 난 지극히 평범하게 자랐고 똑같은 경쟁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심장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너 만의 특별한 사람이 되라고 늘 말씀하신 부모님 말씀이 지금의 내가 된 것 같다.
아빠의 편지는 17년 전에는 내가 어떤 감정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후 다시 아빠의 편지를 읽어보니 알 거 같다. 자식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 그렇게 난 아빠의 편지를 읽고 반성도 많이 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아빠는 나에게 숙제를 내 주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