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
10월이면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는 강원도 정선 민둥산. 민둥산이란 곳은 들어봤지만 가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 년마다 한 번씩 사람들과 산을 오른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 및 보호자들과 함께 말이다. 해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다음에는 어디 산에 오를까? 기대가 되는 원정대이다.
작년에는 속리산 문장대를 다녀왔고 이번엔 강원도 정선이라니 원정대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 좋은 산을 다니고 있으니 건강 지킴이가 된 거 마냥 기분 좋은 산행을 하고 있다.
2주 남짓 원정대를 남겨놓고 벼락치기라도 하듯 난 예비 산행을 다녀왔다. 민둥산으로..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을 살펴본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 걸리는지, 등산로는 험하진 않은지, 안전한지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 같은 장소는 있는지 등등 예비 산행을 통해 한번 훑고 싶었다. 그러면 실전 산행에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나만의 등산 방법으로 마치 예습, 복습하는 것처럼 말이다.
2시간 30분 정도 걷고 또 걸었을까?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2시간 30분 보다 더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나로선 2시간 30분도 최선이고 최고의 시간였다. 남들처럼 똑같이 걷다 보면 페이스 조절이 힘든 걸 알기에 원정대 준비를 하면서 연습 산행은 필수코스가 된다.
민둥산은 참 좋았다. 험한 산도 아니었고 처음 올라갈 때만 오르막 길이라 정신줄 꽉 잡아야겠다고 했는데 그 구간만 지나고 나니 오르막 내리막이 사이좋게 등산로를 이어주고 있었다. 반 정도 올라갔을까? 쉼터가 보였고 드디어 앉을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잠깐 벤치에 앉아 물로 등산의 열기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쉼터가 조금 달랐다. 산 중턱에 빈대떡 향기가 강렬하게 등산객을 맞이해주는 게 아닌가? 빈대떡 기름 냄새가 향수보다 더 매력적인 향기를 뿜어대니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다음에 갈 땐 빈대떡을 먹으러 가야겠다 싶을 정도로 빈대떡이 너무 맛나보였다.
예비 산행 때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올라갈 땐 날씨가 너무 좋아 정상을 올라와 풍경 맛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산 중턱에 걸터앉은 구름들이 마치 비웃듯이 '오늘은 풍경 맛집 휴일'이라고 알려주는 거 같았다. 안개로 자욱하고 강한 바람으로 서 있기 조차 힘이 들었다. 바람막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봤을 건데 천만다행이었다. 강한 바람에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을지 정상에 도착한 사람들은 싸온 도시락을 배낭에서 껐냈다 넣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람의 속도, 잔잔한 바람이 잠시 민둥산에 정차한 듯했다. 우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빨리 점심을 먹읍시다.’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를 찾아 먹기에 바빴다. 배고픔은 정말 바람도 멈추게 해 주는 거 같다.
우리도 싸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놓고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보온도시락에 싸온 찰밥의 온기가 적당히 식어 얼어붙은 내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난 아직 산을 즐기지 못한다. 산에서 물 한 모금 먹는 것도 조심스럽고 당 충전으로 가져온 초코바 하나를 다 먹지 못한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늘 긴장을 한다. 자연스럽게 편하게 올라가면 좋겠지만 아직 산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올라가지 못한다. 이제는 산행을 조금씩 하다 보니 예전보단 잘 올라간다.
산에서 규정속도를 너무 잘 지킨다. 조금의 과속도 필요한데 말이다.
아직 초코바 하나는 다 먹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한입 베어 물었다면 지금은 세입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일취월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씩 산과 친해지면 초코바 하나쯤은 다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다.
실전 산행이다.
그리고 딱 2주 뒤 원정대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봄부터 준비한 원정대가 오긴 올까? 갈 수 있을까? 했는데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를 원정대 앞으로 바래다주었다.
원정대는 보통 100여 명의 환자 및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 봉사팀이 꾸려진다. 100명을 통솔하는 대표님과 임원진들 덕분에 안전한 원정대를 만들 수 있다. 원정대를 할 수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준비를 해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드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료진들은 각 병원을 대표하는 선생님들이시다. 나의 담당 교수님도 해마다 참가해주신다. 바쁘시거나 일정이 있을 실 때는 참석하지 못하시지만 되도록이면 참석을 해주시니 환자들한테는 담당 의사 선생님과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추억이며 선물이 되어준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렇게 난 두 번째 민둥산을 오르며, 또 내리며 걸었다. 어쩌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정대는 어린아이부터 나처럼 성인 환자들까지도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정상에 모두 도달한다. 그 모습을 멀리서 의사 선생님들과 환자 보호자분들이 지켜보신다.
환자 보호자분들은 때론 눈물을 흘리신다.
늘 꿈꿔온 이상이 현실과 마주했을 때…
내가 첫 원정대 때 엄마도 눈물을 흘리셨다.
절대 심장이 아프다고 해서 운동을 못하거나 천 미터가 넘는 산을 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남들과 심장이 다를 뿐 결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우리는 세상에 보여주며 조금씩 성장 중이다.
내년 원정대는 어디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