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譫妄)

그 기억 저편엔 누가 살고 있을까?

by 김한우리
섬망
섬망은 신체 질환이나, 약물, 술 등으로 인해 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주의력 저하와 의식 수준, 인지 기능 저하를 특징으로 하며, 그 외 환시와 같은 지각의 장애, 비정상적인 정신운동 활성, 수면 주기의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네이버 통합검색)


“이번 수술은 굉장히 힘들 거야, 판막도 많이 망가져 본인 심장도 부담을 많이 느낄 거야. 그래서 심장을 기계판막으로 교체해야 하고 심박동기 줄도 낡아 새 걸로 교체도 해야 하고 할게 참 많다. 이번 수술은 아마 길어질 거고 모든 게 힘들 거야. 그리고 너무 말라서 몸무게를 쫌 늘렸으면 좋겠어. 수술하고 추후에 버티는 체력도 필요하니깐"

25년 동안 내가 교수님에게 진료받으면서 이렇게 심각한 표정과 말투는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내 상태가 많이 힘든 건가?’

오히려 나를 자책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집으로 돌아와 난 심장을 걱정하는 것보다 나의 몸무게부터 걱정했다. 지금도 살이 많이 찐 상태인데 어디까지 몸무게를 더 늘려야 하나, 애꿎은 고민만 남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자신 있는 거라 그나마 위안과 위로가 되었다.

먹자 그리고 살찌우자!! 수술까지 목표가 되었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 날씨였다. 매미들이 나무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맴맴 하는 소리가 마치 병실 안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병원 안 공원은 여름맞이용으로 초록옷으로 갈아입고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병실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무릉도원은 바로 이곳이구나 하며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수술 날짜: 8월 4일

네 번째 수술 날짜: 8월 4일

운명인 것인가??

난 8월 4일 이날을 두 번째 생일로 지정했다.

‘이번엔 왜 이렇게 나약해진 거야. 늘 하던 건데 분명 잘 될 거야.‘

흉부외과 전담간호사 선생님과 수술 날짜 때문에 잠시 병원에 들른 날이다.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왠지 자신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잔뜩 겁을 먹었고 무서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알기에 더욱더 세심하게 배려해주셨다.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차가운 수술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실은 냉동창고 같았다. 너무 추워 몸서리가 쳐지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수술실 안에서 분주하게 자기 몫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내가 마취가 되고 모든 준비가 되었을 때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겠지?? 마취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의 세포들은 살아 숨 쉬고 모든 감각들이 수술실 안 풍경을 훑고 있다. 각종 기계들과 내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링거 줄이 현실과 마주하며 현타가 오는 그 시점이다. 그때 마취가 시작되면서 나의 모든 감각들이 스르르 고요해지고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심장수술이 시작된다.


15시간 수술 후
난 코마 상태가 되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 하지만 폐동맥 고혈압이 올라가 떨어지지 않아서 비상이었다.

정상수치보다 높게 올라가다 보니 심장과 와 흉부외과는 긴급회의를 열어 사태를 수습하기로 했다.

우선 심장과는 재수술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15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 나왔는데 다시 재수술이라는 말에 부모님은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반면 흉부외과는 약물로 일단 치료를 하면서 수치가 떨어지는지 지켜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양쪽 의견이 엇갈린 상태에서 난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만 있었다. 인공 호흡기를 한 채로..


고민 끝에 약물치료가 결정되어 많은 약들을 내 몸에 투여하면서 추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난 꼬박 보름 동안 의식이 없는 채로 무의식 속에서 지냈다.

자가호흡도 안되어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난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지금부터는 내가 겪은 섬망 증상들을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보겠다. 말도 안 되는 풍경과 스토리로 무의식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신기하고 기이한 경험들이 현실이 아닌 이상 세계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내 머릿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말로만 들었던 섬망 증상을 경험해보니 유쾌하진 않다. 찝찝할 뿐이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떤 사람이 권총을 들고 누워있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나는 총에 죽는 것인가? 이렇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는데 어찌 됐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바로 그때 누군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병실로 찾아왔다. 나에게 총을 겨눈 사람을 단 숨에 제압해버리고 사라진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꿈해몽을 굳이 해보자면 저승사자와 나를 지키려 하는 수호천사였나?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넌 누구니?'

환자복을 입고 맨발로 난 거리를 헤매고 있다. 드라마틱하게도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었다.

툭하고 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나는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비를 맞아도 춥지 않았고 맨발인데도 아프지 않았다. 내가 발길을 멈춘 곳은 장례식장 앞이었다. 꼭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모든 시선이 나를 감싸 안는다. 장례식장 그 길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와 검은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틈에 난 한 아이를 발견했다. 작고 예쁜 아이는 유골함을 꼭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누구 하나 그 아이를 보살피거나 왜 우냐며 달래주지 않았다. 나라도 그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 하염없이 장례식장 길 가운데 서서 그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만 봤다.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또 유골함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이 리셋된다.


'아가, 이제 일어나야지. '

이제 나도 지쳤나 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난 힘들었던 걸까? 누군가 나를 이동 침대에 태워 불구덩이 앞에다가 놓고 간다.

뜨거운 불구덩이가 점점 더 내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난 소리친다. 살려달라고,, 그리고 다시 기억이 전환된다. 반복되는 기억들이 무의식 속에서 의식으로 잠깐씩 돌아올 때 살짝 눈을 떠본다. 깜깜한 밤이다. 정말 마지막인가 싶어 내려놓을 때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딱 10년 만이다. 할머니가 즐겨 입으신 하늘색 치마와 흰색 저고리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한 손엔 커다란 보따리를 가슴에 품고 내 곁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난 반가운 나머지 침대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굳어버린 내 몸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따뜻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가 이제 일어나야지.' 할머니는 연신 내 머리를 만져주셨다.

그때였을까? 차가웠던 몸이 혈액순환되는 것처럼 찌릿하면서 몸이 따뜻하게 열기가 올라왔다. '아가, 아프지 마. 이 할미가 우리 아가 지켜줄게'라며 할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나의 세포를 깨우는 거 같았다.


어릴 적엔 할머니는 나를 싫어하셨다. 아빠가 월급을 받는 족족 나의 병원비며 약값으로 나갔기에 부모 잡아먹는 귀신이라며 비난을 퍼부으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첫 번째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나를 받아주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내 편이 되어주셨다. 동네 할머니 친구분들까지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셨다. 그만큼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면서 우리는 싸우기도 서로 부둥켜 울기도 하며 27년이란 세월을 다 쏟아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잠시 외출증을 끊고 내려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며칠 뒤에 깨어났다고 한다. 할머니를 만나서 깨어났는지 의학에 힘을 빌려 깨어났는지 지금까지 미스터리이지만 난 살았다. 그게 펙트이다.!!



꿈을 꾸며 기억을 잃을 동안 현실에서는 의료진들이 불철주야 나를 살리기 위해 애써주셨다는 말은 내가 병실로 올라가서 온전하게 정신을 차리고 일상이 가능했을 때 엄마가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콧줄을 통해 겨우겨우 약물 투여만 하고 링거로 영양제를 수시로 공급받아 생명 유지만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내가 신나게 꿈을 꾸면서 현실과 차단하는 동안 현실에서는 피 말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마치 불가사의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였다.



이 모든 게 섬망 증상이라고 의료진들은 말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가 다수가 아닌 극소수의 일부분이고 특정 대상들이 겪는 뭐랄까?? 마치 신의 부름을 받고 예지몽과 악몽 사이를 오고 가며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를 경험하고 온 것 같다.

섬망이라는 그곳 어딘가에서
나 말고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기억 저편엔 정말 누가 살고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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