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옥' 국밥 배달/HMR 프로젝트. 하지만 현서는 "배달은 '환대'가 거세된 비즈니스"라며 "경험은 오직 '언박싱(Unboxing)' 1분에 압축된다"고 선언한다. (Theme 3)
텅 빈 '송정옥'의 홀. 마감 후의 고요함 속에서 이태웅은 차현서의 태블릿을 응시했다. 화면은 두 개로 분할되어 있었다.
왼쪽은 '언박싱(Unboxing)'.
'배달의민족' 앱 화면과 깔끔하게 포장된 HMR(가정간편식) 제품 이미지가 떠 있었다.
오른쪽은 '환대(Hospitality)'.
눈부신 조명 아래 예술작품처럼 플레이팅된, 그가 꿈에서나 그려봤을 법한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의 코스 요리 사진이 있었다.
그의 심장은 본능적으로 '환대' 쪽으로 기울었다.
"이... 이쪽은 뭡니까?"
그가 '파인 다이닝' 사진을 가리켰다. 그것이 '송정옥' 60년 역사의 '진화'처럼 느껴졌다.
"그건 '환대'의 정점입니다. '송정'이죠."
현서가 말했다.
"사장님의 '철학'을 복제해, '맛'을 넘어선 최고의 '경험'을 파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이건 '송정옥'의 '확장'이 아니라, '송정'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50팀의 웨이팅 고객을 잡는 해결책은 아니죠."
그녀가 화면 왼쪽, '언박싱' 파트를 탭했다.
"사장님의 질문. '더 많은 사람에게', '줄 서지 않고' '맛'을 전달하는 법. 그 답은 이겁니다."
이태웅의 표정이 굳어졌다.
"배달... 말입니까?"
그의 머릿속에 차갑게 식어 플라스틱 용기에 엉겨 붙은 국밥, 불어 터진 당면이 스쳐 지나갔다.
"현서 님. '송정옥'의 국밥은... 12시간 끓인 '온도'와 유기 그릇의 '무게감'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그걸...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오토바이로 보낸다고요? 그건 '송정옥'이 아닙니다. '맛'을 모욕하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 다시 '장인'의 고집이 묻어났다.
"맞습니다."
차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99%의 식당이 배달 비즈니스에서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환대'의 문법으로 '배달'을 하려 하죠. 그리고 '맛'만 믿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송정옥'의 입구에 있는 가마솥을 바라봤다.
"'송정옥' 매장에서, 우리는 이 가마솥(물리), 박 여사님의 응대(인간), 스토리보드(정보), 웨이팅(사회)으로 고객을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현서가 태블릿을 들어 배달 앱 화면을 띄웠다.
"배달에는 그 '증거'들이 없습니다. 배달은 '환대'가 완벽하게 거세된 비즈니스입니다."
"..."
"조명도, 음악도, 친절한 서버도 없습니다. 고객이 마주하는 건 '앱 화면'과 '비닐봉지' 뿐이죠. 그래서 배달은 '경험'을 포기한 사업이냐고요? 천만에요."
현서가 태블릿 화면을 이태웅에게 돌렸다.
"배달은, '송정옥' 매장의 2시간짜리 '환대' 경험을, 고객이 포장을 뜯는 단 '1분'의 '언박싱(Unboxing)' 순간에 모두 압축시키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 설계'입니다."
"1분... 말입니까?"
"네. 고객은 '맛'을 보기 전에 이미 '언박싱'의 순간에 '심판'을 끝냅니다."
현서가 이태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배달 앱에서 '송정옥'의 '파사드'는 무엇일까요?"
"파사드...요?"
"네. 가게의 얼굴이요."
이태웅이 배달 앱 화면을 쳐다봤다. 맨 위에 있는 사진.
"...음식 사진...입니까?"
"정확합니다. (정보적/물리적 증거) 그 사진이 어둡거나 맛없어 보이면, 고객은 60년 전통의 '송정옥'을 그냥 '스크롤'해 버립니다. 간판이 깨진 것보다 더 치명적이죠."
"그럼... '인간적 증거'는요? 박 여사님의 응대는..."
"그건 '손편지 스티커'가 대체합니다. '환대'는 사라지고, '나는 당신을 생각했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신호'만 남죠."
현서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인테리어'는 뭘까요? '물리적 증거'의 핵심이요."
이태웅은 대답하지 못했다. 현서가 직접 답했다.
"'포장'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국물이 샜는가? 눅눅해졌는가? 그릇이 값싸 보이는가? 이 '물리적 부정 증거'가 터지는 순간, 사장님의 '완벽한 맛'은 고객에게 가닿기도 전에 '불쾌함'이 됩니다."
이태웅은 혼란스러웠다. '송정옥' 매장을 살리기 위해 배웠던 모든 '긍정 증거'의 룰이, '배달'이라는 세계에서는 정반대로, 혹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장님."
현서가 태블릿을 껐다.
"과제를 드리죠. 오늘 밤, 이 동네에서 가장 리뷰가 많은 국밥집 5곳의 음식을 '배달'시켜 보십시오."
"..."
"그리고 '맛'을 보지 마십시오."
"네?"
"맛은 보지 마시고, '언박싱'만 경험하십시오. 앱 화면은 어땠는지, 포장은 어떻게 왔는지, 샌 곳은 없는지. 그리고... 그 1분의 경험 동안 사장님이 느낀 '부정적 증거'들을 전부 기록해오세요."
'맛'의 장인에게 내려진, '맛'을 보지 말라는 잔인한 과제였다.
16화에서 계속......
배달은 '환대(Hospitality)'가 거세된 비즈니스다.
'맛'만 믿고 배달에 뛰어드는 것은, 지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고객 경험은 매장의 2시간이 아닌, '언박싱(Unboxing)'의 1분에 압축된다.
파사드는 '앱 화면 속 사진'이다. (정보/물리적 증거)
인테리어는 '포장 용기'다. (물리적 증거)
서비스는 '손편지 스티커'다. (인간적 증거)
이 '언박싱'의 순간에 단 하나의 '부정적 증거'(새는 국물, 눅눅한 튀김)라도 터진다면, 당신의 '맛'은 고객에게 가닿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