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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셰프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여기서 사장님은 '요리사'가 아니라 '브랜드'입니다." (Theme 5) 현서는 태웅을 '장인정신'을 갖춘 스타 셰프로 퍼스널 브랜딩한다. '송정'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무대'가 된다.




"여기서 사장님은 '요리사'가 아니라 '브랜드'입니다." (Theme 5) 차현서는 이태웅을 '장인정신'을 갖춘 스타 셰프로 퍼스널 브랜딩한다. '송정'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무대'가 된다.


'송정(松亭)'의 오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청담동 골목 안쪽, 간판 하나 없는 콘크리트 '성벽' 안에서는, 이태웅의 '맛'이 '예술'의 경지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는 '송정옥'의 곰탕 육수를 재해석했다. 12시간 고아 낸 육수를 다시 12시간 동안 걸러, 수정처럼 맑지만 맛은 폭발적인 '곰탕 콩소메(Consommé)'를 만들어냈다. 그 육수를 바탕으로 한우 안심, 캐비어, 제철 버섯을 곁들인 코스는, 그가 생각해도 30만 원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현서 님."


가오픈을 앞둔 최종 점검 날, 이태웅은 자신의 시그니처 디시를 차현서 앞에 내놓았다.


"보십시오. '송정옥'의 60년 철학을 담은 30만 원짜리 '맛'입니다. 이 정도면..."


차현서는 예술작품 같은 음식을 1초간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이태웅을 쳐다봤다.


그녀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맛있어 보입니다, 셰프님."


그녀가 처음으로 이태웅을 '사장님'이 아닌 '셰프님'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건... '상품'이 아닙니다."


"네? 이게 상품이 아니면..."


"이건 '소품'입니다."


현서의 대답은 또다시 이태웅의 상식을 부쉈다.


"사장님... 아니, 셰프님."


현서가 텅 비었지만 완벽하게 세팅된 '송정'의 다이닝 홀을 가리켰다.


"'송정옥'은 '식당(食堂)'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정'은 '무대(Stage)'입니다."


"무대...라고요?"


"네. 그리고 저 30만 원짜리 훌륭한 요리는, 2시간 30분짜리 공연을 채우는 '소품'일 뿐이죠. 그렇다면, 이 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이태웅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셰프님. 당신입니다."


현서가 태블릿을 켰다. 이번에 띄운 것은 메뉴판이나 설계도가 아니었다. 패션 매거진의 화보 같은 이태웅의 '프로필 사진' 시안과 '셰프's Note(철학)'라는 제목의 긴 글이었다.


"이게... 뭡니까."


"고객은 30만 원을 셰프님의 '요리'에 지불하는 게 아닙니다. 셰프님의 '스토리'와 '철학', 그리고 '당신이라는 브랜드'에 지불하는 겁니다."


그녀가 진단서의 마지막 항목을 가리켰다. (Theme 5: 비즈니스 모델)


"'송정옥'에서는 '가마솥'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물리적 증거) 하지만 '송정'에서는, '이태웅이라는 셰프'가 가장 강력한 '인간적/심리적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요리사입니다."


태웅이 뒷걸음질 쳤다.


"아니요. 오늘부터 셰프님은 '요리사'가 아니라 '브랜드'입니다."


현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고객은 '맛있는 곰탕'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닙니다. '60년 전통을 3대째 이어온 장인, 이태웅 셰프가 내어주는 단 하나의 요리'를 '경험'하러 오는 겁니다. 그 '경험'에 30만 원을 내는 거죠."


현서는 '송정'의 서비스 프로토콜을 띄웠다.


"'송정옥'의 박 여사님은 '정성'을 전달했습니다.(인간적 증거) 하지만 '송정'의 매니저는 '철학'을 전달할 겁니다."


그녀가 스크립트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손님에게 콩소메를 서빙하며)


"이 요리는 '송정'의 시그니처, '60년의 눈물'입니다. 3대 이태웅 셰프님이 60년 된 씨육수를 24시간 동안 걸러내어, '맛'이 아닌 '역사'를 담아냈습니다."


"'맛'이 아닌 '역사'를 판다...?"


"네.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 셰프님이 직접 무대에 오르셔야 합니다."


"무대...라뇨?"


"디저트 코스가 나갈 때, 셰프님은 주방에서 나와 모든 테이블에 '직접' 인사를 하셔야 합니다. 오늘 요리는 어땠는지, 어떤 철학으로 준비했는지. 고객은 '음식'을 먹고 감동하는 게 아니라, '그 셰프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인증'할 겁니다."


이태웅은 아찔했다. 그는 '맛'으로 승부하는 묵묵한 장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배우'가 되라고, '브랜드'가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런 건 못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럼, 30만 원짜리 곰탕을 팔 자격이 없는 겁니다."


현서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고객은 '맛'만 원했다면 2만 원짜리 '송정옥' 특 곰탕을 먹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30만 원을 내고 이 '닫힌 문'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맛'을 넘어선 '가치', 즉 셰프님의 '스토리'와 '존재'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이태웅에게 '셰프's Note'가 담긴 시안을 건넸다.


"미쉐린 가이드의 인스펙터들은 '맛'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셰프의 '철학'을 봅니다. '송정'은 이 '무대'고, 셰프님은 '주인공'이며, 이 '셰프's Note'는 '대본'입니다."


"연습하세요, 셰프님. 당신의 '요리'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를 팔 시간입니다."








20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9


파인 다이닝에서 셰프는 '요리사'가 아니라 '브랜드'다.


레스토랑은 그 '브랜드'의 가치를 신격화하는 '무대(플래그십 스토어)'다.


고객은 '음식(What)'에 돈을 내는 것이 아니다.


'누가(Who)' '왜(Why)' 만들었는지, 그 '스토리'와 '철학'에 돈을 낸다.


'맛'은 파인 다이닝의 '기본값'일 뿐, '차별점'이 될 수 없다.


'셰프의 존재' 그 자체가 고객이 지불하는 가치의 핵심이자,


가장 강력한 '인간적/심리적 긍정 증거'다.


주방에 숨지 마라. 무대로 나와라. 당신이 곧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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