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화. "아무나 오지 마세요"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송정'의 파사드 전략. "파인 다이닝은 '배타성'이 전략입니다." 간판을 숨기고, 예약을 어렵게 만들며 '희소성'을 극대화한다. '진입 장벽'이 어떻게 '심리적 가치'가 되는가.




'송정(松亭)'의 부지는 '송정옥'처럼 대로변에 있지 않았다.


청담동의 한적한 골목 안쪽, 유동인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산한 곳이었다. 태웅은 며칠째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서 님... 정말 여기 맞습니까?"


태웅이 텅 빈 거리를 보며 물었다.


"'송정옥'은 입구에 가마솥이라도 끓여서 냄새(물리적 증거)로 손님을 끌었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네.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차현서가 현장 도면을 확인하며 태웅의 말을 받았다.


"사장님, '송정옥'은 '배고픈 사람'을 유혹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정'은 '특별하고 싶은 사람'을 선별하는 전략입니다. 유동인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될 거니까요."


그녀가 1층 외벽, 즉 '파사드'가 될 공간을 가리켰다. 통창 하나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었다.


"여기에... '송정'이라고 간판이라도 작게 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식당'처럼..."


"아니요. 간판은 없습니다."


현서의 대답은 단호했다. 태웅은 이제 이 패턴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매번 그녀의 '제거' 전략은 상식을 벗어났다.


"간판이... 없다고요? 그럼 고객들이 어떻게 알고..."


"이 벽 자체가 '파사드'입니다."


현서가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손으로 쓸었다.


"여기에 '송정(松亭)'이라는 두 글자 대신, '소나무(松)' 문양 하나만 음각으로 새길 겁니다.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요. 문은... 저기 보이는 무거운 황동 문 하나가 전부입니다."


"사장님." 현서가 태웅을 돌아봤다.


"'송정옥'의 문이 '누구나' 들어오라는 '열린 문(초대성)'이었다면, '송정'의 문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는 '닫힌 문(배타성)'입니다."


"고객은 저 닫힌 문 앞에서 '나는 이 문을 열 자격이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태웅은 혼란스러웠다. '송정옥'을 살린 모든 전략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었다.


"'초대'하지 않으면... 어떻게 고객이 옵니까?"


"찾아오게 만들지 않습니다. '찾아내게' 만들 겁니다."


현서가 태블릿을 켰다. '송정옥' 때와는 다른, 검은색 배경의 세련된 UI가 떠올랐다.


"'송정'의 진짜 파사드는 이 골목이 아닙니다. '캐치테이블'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소수의 미식가들 '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입구를 '송정옥'보다 훨씬 더 좁힐 겁니다."


그녀가 예약 정책(Policy) 페이지를 띄웠다.



[송정(松亭) 예약 정책]


100% 예약제 (워크인 고객 절대 불가)

예약 오픈: 매월 1일, 오전 10시 정각

예약금: 1인 10만 원 (당일 취소 시 환불 불가)



"미쳤군요." 태웅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이건... 손님을 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거잖습니까."


"정확합니다. '밀어내는 것'."


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송정옥'의 전략이 '사회적 증거'(줄 서는 가게)였다면, '송정'의 전략은 '심리적 증거'(희소성)입니다."


"고객들은 불평할 겁니다. '예약하기 더럽게 힘드네.' 그리고 예약에 성공하는 순간... 안도하고, '자랑'할 겁니다."


현서가 태웅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고객은 30만 원짜리 음식을 먹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 예약하기 힘든 송정을, 내가 드디어 잡았다'는 그 '성취감'과 '특별함'에 돈을 지불하는 겁니다."


"사장님. '송정옥'의 줄이 '기다림'이라는 '비용'이었다면,"


"'송정'의 '예약 전쟁'은 그 자체로 '가치'를 증명하는 '경험'입니다."


"이 '진입 장벽'이야말로 '송정'의 첫 번째 코스 요리이자, 고객이 30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가치'입니다."


이태웅은 그제야 깨달았다.


'송정옥'은 '가마솥'으로 고객을 유혹했다.


'송정'은 '닫힌 문'으로 고객을 선별한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19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8


파인 다이닝의 파사드 전략은 '초대성'이 아닌 '배타성'이다.


'아무나 올 수 없다'는 '진입 장벽' 자체가 '희소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증거'가 된다.


'노포'의 가치가 '모두가 아는 맛'이라면,


'파인 다이닝'의 가치는 '아무나 모르는 경험'이다.


고객은 '예약의 어려움'을 '불편'으로 느끼는 동시에,


그 '불편을 극복한 자신'을 '특별함'으로 인지한다.


이 '진입 장벽'을 설계하는 것이,


고가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17화. 두 번째 얼굴, '환대'의 정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