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T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현서의 마지막 대답. "아니요. 사장님의 '훌륭한 맛'이, 제가 설계한 '긍정적 증거'들을 통해 비로소 고객에게 '증명'된 것입니다. 맛은 기본이지만, 증명되지 않은 맛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대청옥'이 '내부 수리'라는 핑계로 문을 닫은 지 한 달.
'송정옥'은 강남 일대에서 '가장 줄 서기 힘든 국밥집'이라는 새로운 명성을 얻었다.
이태웅은 더 이상 새벽 3시에 홀로 육수 솥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맛'을 지키는 '장인'에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경영자'가 되어 있었다.
"박 매니저님! 14번 테이블 수육 나갑니다. '스토리텔링' 잊지 마세요!"
"현수 씨! HMR 포장 주문 20건. '실링'(물리적 증거) 상태, 내가 직접 확인할 겁니다!"
그는 '맛'만 보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점검했다.
입구의 가마솥은 여전히 뜨거운 김(물리적/후각적 증거)을 뿜어냈고, 웨이팅 시스템(사회적 증거)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갔다.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인간적 증거)은 현서의 프로토콜대로 "12시간 고아 낸 곰탕입니다"(정보적 증거)라며 '가치'를 전달했다.
모든 '긍정적 증거'가 완벽하게 조율된 '송정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신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신뢰의 정점에서, 이태웅의 '맛'은 고객들에게 '감동'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송정옥'의 마감을 박 여사에게 맡긴 이태웅은 6개월 전, 자신이 '태만'의 증거라며 외면했던 청담동 골목으로 향했다.
'송정(松亭)'.
간판 하나 없는 육중한 황동 문.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소나무(松) 음각.
차현서가 설계한 '배타성'의 파사드는, 그 자체로 '아무나 올 수 없다'는 강력한 '심리적 증거'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은 '송정'의 VVIP 초청 가오픈 날이었다.
태웅은 60년 된 '송정옥'의 앞치마를 벗고, '송정'의 총괄 셰프를 상징하는 새하얀 조리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더 이상 국밥을 토렴하는 '사장님'이 아니었다. '장인정신'이라는 '브랜드'가 된 '이태웅 셰프'였다.
"셰프님. 준비되셨습니까?"
홀을 총괄 점검하던 차현서가 그에게 다가왔다.
"..."
태웅은 말없이, 30만 원짜리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할 '곰탕 콩소메'를 바라봤다. '송정옥'의 60년 '맛'이 수정처럼 맑게 응축되어 있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태웅이 말했다.
"이 한 그릇에, 현서 님이 말한 '브랜드'니 '가치'니 하는 것들이 다 달려있다고 생각하니까... '송정옥'의 가마솥보다 100배는 무겁습니다."
"두려우신 게 당연합니다."
현서가 말했다.
"'송정옥'에서 셰프님의 '맛'은,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역할이었습니다. 2만 원짜리 '가성비'였죠."
그녀가 콩소메 그릇을 바라봤다.
"하지만 '송정'에서 이 '맛'은, 고객의 '기대'를 '압도'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30만 원짜리 '가심비'죠. 고객은 '맛'이 아니라 '감동'을 원합니다."
그녀가 19화에서 건넸던 '셰프's Note(대본)'를 그에게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 '감동'은 '맛'으로 시작해서, 셰프님의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디저트 코스가 시작될 무렵.
태웅은 주방에서 나와, 핀 조명 하나에 의지한 채 고요한 '송정'의 홀, 즉 '무대'의 중앙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송정'의 오너 셰프, 이태웅입니다."
그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는 '요리사'가 아니었다. 그는 '브랜드'로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콩소메는 '60년의 눈물'입니다. 제 할아버지의 땀과 아버지의 시간이 24시간 동안 걸러져, '맛'이 아닌 '역사'로 담겨있습니다. '송정옥'이 '허기'를 채우는 곳이라면, '송정'은 '이야기'를 채우는 곳입니다. 부디, 저의 60년을 음미해 주십시오."
고객들은 숨죽인 채, '곰탕'이 아닌 '스토리'를 맛봤다.
'맛'은 '인간적 증거'와 '정보적 증거'를 만나 비로소 '예술'이 되었다.
그날 밤, '송정'의 오픈은 성공적이었다.
홀로 남은 현서와 태웅이 와인잔을 부딪쳤다.
"현서 님."
태웅이 물었다.
"결국... '맛'이 이긴 게 맞았죠?"
차현서가 웃었다. 4주 만에 처음 보는, 따뜻한 미소였다.
"아니요."
그녀가 태블릿을 껐다.
"사장님의 '훌륭한 맛'이, 제가 설계한 '긍정적 증거'들을 통해 비로소 고객에게 '증명(Prove)'된 것입니다."
"맛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맛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셰프님."
25화(완)에서 계속......
승리는 '맛'이 아니라 '증명'의 문제다.
'맛'은 기본값이다. 승부는 그 '맛'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납득'시키는가에서 갈린다.
'증거'들이 고객의 '기대 가치'를 최고로 높여놓았을 때,
'맛'은 그 기대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만약 '맛'이 그 기대를 배신한다면,
고객은 '실망'이 아닌 '분노'를 느낀다.
'가짜 증거' + '가짜 맛' = 사기 (즉각적 실패)
'가짜 증거' + '진짜 맛' = 인지 부조화 (혼란, 불신)
'진짜 증거' + '가짜 맛' = 배신 (최악의 실패)
'진짜 증거' + '진짜 맛' (송정옥/송정) = 감동 (브랜드 완성)
'맛'은 기본이다.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당신의 훌륭한 맛은,
고객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