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대청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송정옥'과 '송정'. 태웅은 현서에게 묻는다. "결국... '맛'이 이긴 것 아닐까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거대 자본의 '카피캣'이었던 '대청옥'은 '강남 핫플'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네이버 플레이스 검색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1점짜리 '진짜' 방문자 리뷰의 파도(부정적 증거)는, 돈으로 쌓아 올린 '가짜' 블로그 포스팅(정보적 증거)을 집어삼켰다.
'송정옥'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대청옥'의 몰락은 '진짜'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회적 증거'가 되어, '송정옥'의 웨이팅 라인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밤 10시, 마감을 마친 '송정옥'의 홀.
이태웅은 그날의 매출 데이터를 정리하던 차현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현서 님."
"...네, 셰프님." 현서가 태블릿에서 눈을 뗐다.
"오늘 '대청옥' 앞을 지나가 봤습니다."
태웅이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말했다.
"문... 닫았더군요. '내부 수리'라고 붙여 놨지만, 사실상 폐업이겠죠."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가짜 증거'는 '진짜 경험'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태웅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눈은 4주 전, 처음 현서를 만났을 때의 '분노'나 '패배감'이 아닌, 진지한 '질문'으로 차 있었다.
"저도... '대청옥'에 가봤습니다. 몰래."
"..."
"음식... 먹어봤어요. 끔찍하더군요. 셰프 흉내도 못 내는 인스턴트 육수 맛이었습니다."
그는 '대청옥'의 1점짜리 리뷰가 가득한 태블릿 화면을 켰다.
"고객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가짜 가마솥', '불친절' 다 맞는데... 결국엔 '맛이 없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가 현서를 바라봤다.
"현서 님. 우리는 이겼습니다. '대청옥'은 졌고요. 현서 님 말대로 그들은 '가짜 증거'로 무너졌죠."
"하지만..."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것은 '맛'의 장인으로서 그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결국... '맛'이 이긴 것 아닙니까?"
"그들이 우리처럼 '진짜' 육수를 끓이고, '진짜' 맛을 냈다면... 그래도 우리가 이겼을까요? 현서 님은 '맛'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결국 이 모든 '증거' 놀음도 '진짜 맛'이 없었다면 다 무너졌을 겁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맛'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되찾고 싶은, 장인의 마지막 항변이었다.
차현서는 태웅을 몇 초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셰프님. '맛'이 이긴 겁니다."
"그럼..."
"하지만 순서가 틀렸습니다."
현서가 태블릿에 '7가지 긍정적 증거'의 도표를 띄웠다.
"셰프님은 '맛'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고객 경험에서 '맛'은 '원인'이 아니라 '마지막 증명'입니다."
"증명...이라고요?"
"네. 가마솥(물리), 스토리보드(정보), 단출한 메뉴(심리), 웨이팅(사회), 박 여사님의 환대(인간)... 이 모든 '긍정적 증거'들은 고객에게 하나의 '약속'을 한 겁니다."
그녀가 태웅을 가리켰다.
"'이 가게는 진짜다. 이 가게의 맛은 당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은 그 '약속'을 믿고 2만 원을 지불하고, 1시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셰프님의 '맛'을 경험하죠."
"..."
"그때, 셰프님의 '맛'이 그 '약속'을 지켜낸 겁니다. '맛'은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긍정적 증거'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입니다."
그녀가 '대청옥'의 사례를 들었다.
"만약 '대청옥'이 '진짜' 육수를 썼다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 직원은 '불친절'하고(부정적 인간 증거), 입구엔 '가짜' 가마솥(부정적 물리 증거)이 있습니다. 고객은 '인지 부조화'를 겪습니다. '어? 맛은 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이 맛도 가짜 아닐까?'"
"하지만 '송정옥'은 어떻죠? '가마솥'도 '진짜'고, '직원'도 '진심'이고, '메뉴'도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맛'도 '진짜'죠. 고객은 '인지적 일치'를 경험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여긴 역시 진짜였어!'"
태웅은 그제야 깨달았다.
'맛'이 홀로 싸워 이긴 것이 아니었다.
'7가지 긍정적 증거'들이 완벽한 '방패'와 '창'이 되어 '맛'이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맛'은 그 무대에서 '주인공'으로서 화답한 것이었다.
"현서 님 말대로..."
태웅이 중얼거렸다.
"맛은 '증명'되어야 하는 거였군요."
"네. '대청옥'은 '맛'도, '증거'도 가짜였습니다. '송정옥'은 '증거'도, '맛'도 진짜였습니다. 그게 우리가 이긴 이유의 전부입니다."
차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정옥'에서의 그녀의 역할은 끝난 듯했다.
"이제 '송정(松亭)'을 준비하러 가시죠, 셰프님. '송정옥'의 '맛'을 '증명'해냈으니... 이제 '송정'의 '격'을 '증명'할 차례입니다."
24화에서 계속......
'맛'은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라,
모든 '긍정적 증거'의 '진실성'을 판가름하는
'마지막 증명'이다.
'증거'들이 고객의 '기대 가치'를 최고로 높여놓았을 때,
'맛'은 그 기대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만약 '맛'이 그 기대를 배신한다면,
고객은 '실망'이 아닌 '분노'를 느낀다.
(긍정적 증거가 높을수록 '실패'의 충격은 더 크다.)
'가짜 증거' + '가짜 맛' (대청옥) = 사기 (즉각적 실패)
'가짜 증거' + '진짜 맛' = 인지 부조화 (혼란, 불신)
'진짜 증거' + '가짜 맛' = 배신 (최악의 실패)
'진짜 증거' + '진짜 맛' (송정옥) = 감동 (브랜드 완성)
'맛'은 기본이다.
하지만 승부는 그 '맛'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어떻게 '납득'시키며,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증명'하는가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