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과 예민함 그 중간 어디의 무신경함
Photo by 이동원
“꼭 나비가 날아가는 것 같지 않나요?”
D가 말했다. 그 말에 자세히 사진을 다시 보니 맺힌 꽃잎에서 나비의 약동하는 날갯짓이 느껴졌다.
“센터 맞은편 편의점 근처에서 피는 수국인데, 매번 수국이 만발한 것만 보다 수국 피는 모습이 신기해서 찍어봤어요.”
아마 손가락으로 토독, 이 말을 자판으로 두드리면서 D는 수줍게 웃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도 수국이 만발한 광경에만 카메라를 들이대고 때론 그 옆에 내 얼굴도 들이대며 포즈를 잡아보았지 수국 피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센터 맞은편 편의점 근처라니. 출근 때마다 지나치는 곳인데도 나는 수국은커녕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에게도 정겹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 급 나 자신이 야속해졌다.
식물 하니 떠오르는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동물과 식물, 양대 산맥을 잘 기른다. 동물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식물은 예의 일반적인, 정원에 피는 그 ‘식물’들.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엄마는 죽어가는 식물도 몇 번 손을 대면 언제 죽어갔냐는 듯 쌩쌩하게 다시 살려내는 신의 손을 가졌다. 수국의 작은 꽃망울에서 나비의 날개를 본 D나 죽어가던 숨결의 맥을 짚어낸 엄마는 내가 부러워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이다. 나는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식물에 한정해선- 무신경함을 가졌고.
그런데 나는 무신경하나 또한 아주 예민하다.
M이 나에게 자신이 쓴 글을 가져와서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예민함’에 관해 쓴 글인데 첨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잘 쓴 글에 괜히 첨삭을 들이부어 아쉬워졌다고 말하곤 좀 미안해졌다. ‘내가 무신경하게 남의 글을 폄하했나?’ 하고.
‘예민하다’라는 건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예민하다는 말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좋게 순화하면 ‘민감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예민과 민감은 비슷하면서도 철저히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함이 부정적인 뜻을 함유하게 된 데엔 크게 세 가지로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우리’가 모르는 것을 ‘너’는 너의 예민함으로 ‘이미’ 알아 채 버렸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 또는 ‘내’가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을 ‘너’는 ‘이미’ 촉을 더듬어 알아채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셋째, 그 결과 ‘우리’에게 ‘네’가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예민하게 상황을 읽고 반응한다. 이 격차에서 예민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내려 꽂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의 촉은 커튼의 실루엣을 더듬고 커튼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러니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샀겠지?
나도 ‘예민’하자면 한 ‘예민’하는 사람이자 눈치 보기의 달인이라, 가끔 저만치 달려 나간 나를 수습하느라 힘이 든다. 예민하고 기민하게 눈치를 보며 낮은 보폭으로 기어가야 하는데, 달뜬 나는 저만치 달려가며 이리치고 저리 치고, 이리저리 치이니 말이다.
그래서 수국이 피어나길 기대하며 그 순간을 차곡차곡 남기는 사람의 섬세함을 배우려고 한다. 예민하지만 섬세함으로 그 날카로운 가시의 틈을 메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죽어가던 식물도 살리고 깨워내는 따스한 손을 상기하며 나도 그런 따스한 손을 가지고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민하고 눈치 봐도 좋다. 수국도 날씨 눈치 봐가면서 피는 것일 테니. 마음껏 예민해지고 마음껏 수더분해져 보자. 오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