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또 다른 나
너에게서 만난 나는 무엇인가?
최근 칼 융의 심리학을 접하면서
우리가 억눌러 온 자아가
다른 사람을 통해 그림자처럼 드러날 수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 의미가 마음에 오래 남아,
내 삶의 기억과 연결 지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20대 초반,
이전보다 더 많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처음으로 감정의 혼란을 겪었다.
4살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그 이후로는 할머니, 이모, 아버지, 아는 분의 집, 그리고 어머니와 지냈다.
가족들은 대부분 바빴고,
형제가 없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법은 잘 모르던 시기였다.
대학에 들어가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생겼고,
그중 몇몇 친구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기하고, 질투도 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불편해했던 친구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냈고,
나는 그런 모습이 낯설고 불편했다.
이유를 되짚어보니,
나는 어릴 시절 다양한 환경을 거치며
'튀면 안 돼', '내 주장을 너무 드러내면 안 돼'라고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억눌러 왔던 것 같다.
또 하나 알게 된 건,
나는 비난하는 말을 듣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고,
그 말이 맞는지 확신도 서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안에는
'비난하면 안 돼'라는 무의식적인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문제를 정확히 짚고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저, 내가 억눌러 온 부분이
다른 사람을 통해 드러날 때
나는 그것을 불편하게 느꼈던 것이다.
물론 모든 불편함이 이런 식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가 가깝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의 피상적인 면만
보게 될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안의 억눌린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것을 수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너를 보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