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레드벨벳, 방탄소년단의 음악들에 마음을 뉘이다.
사월이 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구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단어들은 매스컴을 따라 맴도는 중이다. 반복되는 슬픈 기억에 머리가 지끈한 시간도 지났다. 마음 한 편 자리한 부채감과 작은 추모의 마음을 잠시나마 뉘일 곳이 필요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 곡들이 생각난다.
위로는 상처받은 곳을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엉뚱한데 밴드를 붙이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곳에 붙여야 낫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15일 발매된 가수 루시드폴 정규앨범 [누군가를 위한,]에 수록된 타이틀곡 <아직, 있다.>를 들은 건 공연장에서였다. “곧 정규앨범을 발표하는데, 타이틀곡을 여러분께 먼저 공개하려고 합니다. 한 번 들어봐 주세요.” 특유의 수줍은 말투로 읊조리고는 나직이 노래를 부르는데 한 줄기 뜨거운 게 흘렀다. 마음에 박혀있던 가시를 루시드폴이 정확히 뽑아낸 것이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
손 흔드는 내가 보이니
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꽃들이 피던 날
난 지고 있었지만
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
- 루시드폴 <아직, 있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이 사람은 벌써 이렇게 승화를 시켜 보내주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성숙하고 큰마음이어야 가능한 일일까?
노래를 듣는 청중들보다 몇 걸음 더, 아티스트는 저만치 걸어가서 괜찮다고 말해준다. 한 날 한 시에 똑같이 겪은 슬픔으로부터 대중을 위로하기까지의 간극은 뮤지션 이전에 한 개인이 충분히 그만큼 아파했기에 가능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 성숙함과 놀라움을 그 당시 충분히 느꼈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 곡은 사월의 어느 날 뉘일 곳이 되어준다.
뮤직비디오가 참 좋다. 감상을 추천합니다.
레드벨벳의 정체성을 알리는 두 미니앨범이 있다. 2015년에 발매된 ‘더 레드 (The Red)’ 앨범과 2016년에 발매된 ‘더 벨벳 (The Velvet)’ 앨범이 그렇다. SM의 새 걸그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발랄한 컨셉의 ‘더 레드’ 앨범 타이틀곡 <Dumb Dumb>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 발매된 앨범이 ‘더 벨벳’ 앨범이었고, 타이틀곡이 <7월 7일>이었다.
<Dumb Dumb>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발라드 곡을 타이틀로 정한 것에 호기심이 갔다. 쇼 비즈니스적으로 컨셉과 안무와 매력어필을 하기 바쁜 것이 걸그룹 시장의 현재인데, ‘발라드곡을 타이틀곡으로 택했다고?’ 의도가 궁금했다. 2016년 3월에 발매한 곡 제목이 <7월 7일>인 것도 낯선 느낌이었다. 곡을 들었을 때는 그저 ‘우리 다시 만나’라는 애절한 보컬이 다할 뿐이었다.
이 곡의 열쇠는 뮤직비디오에 있었다. 기울어진 앵글과 쉴새없이 등장하는 물, 그리고 잠긴 문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을 구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열쇠구멍 모양 실루엣까지.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들이다. 아,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구나. 감히 짐작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요소는 더 많다. 당시엔 섬뜩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당시 레드벨벳의 이 작품을 보며 느꼈던 건 SM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감정적 배신이라는 말이 있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 속으로 공감하더라도 어떤 명분 때문에 드러내지 않고 체면을 지키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감정적 신뢰는 깨어진다. 적어도 ‘나 공감해요’를 해줘야 믿음이 깨어지지 않는 거다.
십대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인 아이돌 산업, 그것도 가장 큰 기업에서 일말의 연대의식을 표했다는 것에 공감과 위로를 받았었다. 조심스러웠겠지만 이렇게 표현했구나, 하는. 어떻게보면 SM의 상품을 오랜 시간 소비했던 소비자로서, 외면하지 않아줘서 고맙다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배운 변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게 뮤직비디오는 깨진 창문 등의 단출한 아이템만으로도 끊임없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메시지를 던진다. 이 뮤직비디오 역시 사월마다 마음을 잠시 뉘일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월드스타가 되어버린 방탄소년단. 당시만 해도 <불타오르네>(2016), <피 땀 눈물>(2016)로 거친 남자 아이돌 퍼포먼스의 정점을 찍을 때였다. 그러다 발매한 <봄날>은 결이 다른 음악으로 느껴졌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의 퍼포먼스가 아닌 노래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첫 순간이기도 했다. 차트에서 오랜 시간 자리잡았고,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가 있는 음악을 하는 팀이라는 것을 팬 외에 대중에게도 알리기 시작하며 지평이 넓어지게 된 순간이었기도 하다.
상징과 세계관의 정수를 보여준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는 또 명확한 상징들로 <봄날> 뮤직비디오를 구현해내었다. ‘노란 리본으로 가득한 회전목마’, ‘지하실의 아이’ 등이 그렇다. 희생자들과 같은 나이인 멤버 정국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구성이었다. 훗날 멤버들은 해당 수익금 기부 사실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구 년이 흐른 지금, 그 과정 속에서 ‘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슬픔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누구나 다 안다. 방탄소년단만큼은 <봄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그 당시 방탄소년단을 잘 몰랐고, 소위 코인을 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정말 모르고 했던 편견어린 짧은 생각이었다.
‘보고싶다’고 운을 떼며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삿말이, 대중적으로도 온전히 한 대상만을 떠올리며 슬프지 않게 열린 형태로 쓰여져 널리널리 들려지는 바람에, 어쩌면 우리의 슬픔도 공중에 흩어져 희석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본다.
이 뮤직비디오 역시 매년 사월, 위로의 조각이 되어줄 것 같다.
결국 이 음악들은, 음악이 사회적 메시지를 띠고 대중에게 다가갈 때, 어떤 방식으로 다가왔고 어떤 위로가 되었는지 또 한 차례 보여줬던 사례가 될 것 같다. 매년 사월이면 이제는 가랑비처럼 찾아올 노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위로의 조각들이 된 노래들을 정리해본다.
음악평론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