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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Sep 29. 2016

거북이 반지와
부산행 기차

이 영화의 제목은 무엇이냐!, Like a Movie #4

"오빠 이 반지는 뭐예요?"


그의 손에는 이상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거북이 모양의 반지, 남자가 끼기에도 여자가 끼기에도 지나치게 튄달까? 아니 예쁘지 않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우정반지 같은 거야."


그런가 보다 했다. 그의 친구들 중 한 부류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친구가 많았다. 함께 운동을 하며 맺어진 인연들은 특별했다. 유도라는 종목 자체가 온몸을 부대끼며 익혀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인지, 유독 선후배 관계가 돈독했다. 자신의 친동생보다 더욱 아낀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했다. 모든 친구들과의 약속에 늘 나와 함께 했던 그가 나를 데리고 가지 않는 모임이 하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약속이 있기도 했고 정작 그가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할 때는 내가 시간이 안되기도 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섭렵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들(?)을 만났다. 


그의 친구들은 대체로 덩치가 좋았으므로 등빨이 좋은 것은 별로 특별히 느끼지 않았다. 맞는 시장 옷이 없어서 맞춤옷을 즐기는 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회사원이라고 보기에는 과하고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생각하기에는 딱히 정장을 입을 자리도 아님에도 그런가 보다 무던히 넘겼다.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인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옆구리에 완전히 붙여지지 않는 팔과 90도는 될 거 같은 허리 굽힘으로 인사를 하는 그들. 장난하나 싶어 웃음이 나오다가 너무 진지한 눈빛들에 이건 뭐야 할 때쯤 그들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거북이 반지. 죄다 거북이 반지를 끼고 있었다. 대여섯 명이 모인 자리에 모두 같은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우정 반지니까 그런가 싶다가도, 다 큰 어른들이 거북이 모양의 반지를 이렇게 단체로 나눠 낀다고?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술잔이 오가고, 형님 형님 소리 드높아 가는데 나만 자꾸 모골이 송연해졌다. 설마 아니겠지라는 말로 나를 달래며 화기애애한 그들 사이에서 화기 애매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같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거북이라는 아이템이 의외긴 했지만 나름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세공이 잘 된 반지였다. 


"오빠.... 이 반지 도대체 몇 명이나 끼고 있는 거예요?"

"왜?"


"아니... 아까 그분들 다 이 반지 끼고 있던데....."

"음...... 천천히 이야기해줄게. 지금은 그런가 보다 하고 있어."


나중에 들은 이야기. 여러분은 영화 해바라기를 봤으려나? 그 반지는 00동 일대를 주름잡던 일명 돌산파의 반지라고 했다. 그는 조직의 장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직이 일진 아이들을 점찍어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어는 봤지만 그건 그냥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도 국가 대표가 꿈이었던 그는 일진도 아니었지만 유난스러운 신체 특징 때문에 조직의 눈에 띄었다. 국가 대표라는 분명한 꿈이 있던 그는 조직에 들어갈 수 없었다. 끌려가서 맞기도 많이 맞고, 때려 부수기도 많이 했단다. 결국 다른 조직에 들어가게 놔두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만 부른다는 큰 형님의 제안으로 그는 큰 형님의 병풍이 되었다. 병풍? 큰 형님이 어디론가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뒤에 서있는 게 자신의 역할이란다. 일종의 보디가드라고 해야 하나?  키 190에 몸무게 108 킬로그램, 그리고 웃지 않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일정 거리 밖으로 물러서는 걸 보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단 자신은 평소 조직의 어떤 활동에도 개입하지 않으며, 큰 형님의 부름에만 움직인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큰 형님의 약속이 그를 다른 조직원과는 달리 자유롭고,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지 않았던 이유라고 대충 설명했다. 자신은 조직에 속해있다기보다 조직의 밖에서 필요할 때만 부름을 받는 별동대 같은 거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별동대고 뭐고 조직 폭력배와의 연애라니!!! 이건 영화에나 있는 이야기 아니었어?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연애를 꿈꿔보긴 했지만 그 목록에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나는 평화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보다는 스윗한 남자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아.... 인생 꼬인다 꼬여. 엉겁결에 시작한 관계지만 엉겁결에 끝낼 수는 없겠구나. 헤어지자고 하면 나 죽는 거 아니야? 어쩌지!!!! 


그런데 신은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헤어질 기회. 모든 연애는 진실되게 해야겠으나, 모든 연애가 절절한 사랑을 베이스로 깔고 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만약 그를 사랑했다면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끌고 갔으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이 기회를 주셨으니 나는 힘껏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며칠 제과점 못 나갈 거야."


제과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제과점 못 나온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왜요?"

"........"


"무슨 일 있어요?"

"형님이 부르셔서......"


"누구?"

"큰 형님"


"왜.... 왜요?"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뭐든 시원시원 머뭇대지 않던 그가 한참을 주억거리다가 입을 뗐다.


"부산 간다. 오늘 밤에 청량리에서 기차타."

"부산에는 왜?"


"부산에서 전쟁이 있어서......"


이건 또 뭔 소리야. 전쟁? 조직 간의 다툼을 전쟁이라고 하고 전쟁 뜬다라고 표현하며, 이런 경우 큰 형님은 반드시 병풍을 대동한다는 것. 그가 가야 할 자리였다. 


"안돼요. 난 못 보내."


짐짓 결연하게 대꾸했다. 


"위험한 일 아니야. 그냥 나는 큰 형님 뒤에 서 있기만 하면 돼."

"일이 커지면? 그쪽에서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러지 않길 바래야지."

"그걸 누가 장담해?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요. 이번으로 끝도 아닐 거고, 전쟁인가 뭔가 오빠 갈 때마다 마음 졸여야 할 거고, 거기서 사단이라도 나면? 난 오빠가 경찰서 들락거리는 거 못 봐요."


"여태 그런 일 없었고, 우리 애들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잘 다녀올게 걱정하지 말고."

"아니, 절대 안 돼요. 나야 큰 형님이야? 만약 오늘 밤 부산행 기차 타는 순간 나랑은 끝이에요."


말을 하면서도 너무 드라마스러워서 손발이 없어질 거 같았다. 내가 이런 대사를 읊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건 기회다. 도망칠 수 있는 기회다. 


"이러지 마라. 내가 가야 할 자리고, 가지 않으면...... "
"왜 손가락이라도 잘라? 형제라면서 손모가지 내놓으라는 사람들한테 왜 목숨을 걸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간단하고? 난 못 보내. 오빠가 그런 일 하는 거 난..... 흐흑!"


엄마 날 왜 이렇게 낳았어. 더 이쁘게 낳았더라면 난 대종상감 여배우가 되었을지도 몰라. 엄청난 연기 실력을 발휘한 내 눈물에 그의 말문이 막혔다.


"겨.... 결정해요.... 난 오빠 손가락 몇 개 없어도 돼....흐흐흑, 하지만 전쟁? 난 오빠가 조직폭력배로 사는 건 못 봐요. 오늘밤 기차를 타는 순간 난 오빠 다신 안 볼 거야. 죽을 때까지!"


그리고는 마구 뛰었다. 천식이 있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데, 이럴 땐 울면서 뒤돌아 뛰어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잖아! 힘껏 뛰어봤자 제과점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고작 걸어서 5분. 때마침 도착한 버스가 어찌나 고맙던지.


그날 밤,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주영아.... 나 청량리야. 네가 소중하니까 가는 거야. 무사하게 돌아올게. 미안하다. 용서해."


다음 날, 그는 제과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3일, 5일, 1주일, 2주일이 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이 됐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헤어질 기회니까 남아있는 마음이 있더라도 다잡아야 했다. 이런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무단결근이 일주일이 넘어가자 사장은 다른 사람을 뽑았다. 물론 격하게 욕했지만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부산으로 전쟁을 뛰러 가서 안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해하시라 할 수도 없잖은가? 게다가 둘의 연애는 짐작은 하지만 사생활에 관심 끄라는 그의 말에 찍 소리도 못했던 사장이니, 나에게 눈치만 줄 뿐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더라. 


2주가 다 되어가던 즈음 검은색 리무진 한대가 제과점 앞에 섰다. 그리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가 차에서 내렸다. 순간 숨이 멎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놀라서 숨이 멎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었다. 


밖에서 그가 손짓을 했다. 잠시 나와보라는 뜻이겠지.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왜 이리 연락이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말을 삼켰다.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오늘이 발인이라......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할머니에게 너 인사시켜 드리고 싶은데 같이 가줄래."

"오빠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던 순간 우리 인연은 끝났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안타깝지만 내가 인사를 드리러 갈 이유는 없어요. 잘 가요. 나 일하러 들어가 봐야 돼요. 잘 가요."


"주영아..... "


돌아가신 할머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와의 이별 때문이었을까? 슬픈 얼굴로 그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서있는 내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짐짓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미친 듯이 청소를 해댓다. 가게 앞을 막아선 검은 정장의 사내 덕분에 한동안 매장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어오지 않았고, 저 자식 뭐 하는 거냐며 화를 내면서도 겁이나 비켜서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장은 속이 새까맣게 탔다. 


"야! 갔다. 쟤랑 무슨 일 있었어? 왜 저래!"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리무진도 검은 정장의 그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의 도망은 성공적이었다. 그날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던 주변 지인들 덕에 건너서라도 소식을 들을 일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2년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영이니?"

"네? 전 데요. 누구... 시죠?"


"나 연우야."

"네? 연우?"


2년 만의 전화, 전화 속 이름과 내가 알던 누군가와 연결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커다란 그가 툭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아... 연우오빠.... "

"잘 지내? 한 번 봤으면 하는데 언제 시간 되니?"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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