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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19. 2022

한 사람의 영향력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알콜 중독자. 마음의 상처가 컸던 소녀는 보호소에 함께 있던 동생마저 죽게 되자, 큰 충격으로 실명을 하게 된다. 그 후 괴성을 질러대고 자살을 수시로 시도하며 앤은 망가져간다. 결국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갇히게 된다.

모두가 그녀를 포기했을 때, 한 노간호사인 로라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한다. 로라는 치료보다는 친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앤에게 책을 읽어주고 맛있는 간식거리를 가져간다. 그리고 기도해주었다.

한결같이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앤에게 어느날 변화가 찾아왔다. 앤 앞에 놓아둔 초콜릿 접시에 초콜릿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로라는 초콜릿 하나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후.....

앤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년 만에 정상인 판정을 받게 되고 학교도 다니게 되었다. 로라의 깊은 사랑은 앤을 세상으로 나오게 했다. 후에 개안수술을 받고 시력도 회복하게 된 앤은 우연히 한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헬렌 켈러와 48년을 함께 했던 앤 셜리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훗날 헬렌 켈러는 이야기한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셜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겁니다."



지독히 외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소리 잃은 새가 되어 마음 속에서 외치던 기도는 "딱 한 사람만"이였다. 딱 한 사람만 내  얘기를 온전히 들어준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딱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준다면. 많은 경우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을 건낸다. 넘어져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별거 아니야. 툴툴 털고 일어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많이 놀랐겠구나. 많이 아프겠구나.'하는 마음으로 함께 머물러줄 때,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조언보다는 같이 흘려주는 눈물이 치유약이 될 수 있다. 

사춘기로 예민한 시기를 보내던 아들과의 일이 생각난다. 혼내기도 타이르기도 하다가, 결국 선택했던 말은

"네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 알아. 네가 아무리 뭐라해도 엄마는 엄마 할 일을 할거야. 너는 사춘기인 네가 할 일을 해도 돼. 마음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도 돼.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는 일을 할거야. 네가 어떻게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있을거야." 아들은 초6때 사춘기를 호되게 겪었다. 눈빛과 행동이 달라지는 아이를 보며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사랑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멈추고 따뜻한 저녁상 차림을 위한 요리시간을 함께 했다. 칼질도 함께 하고 재료손질도 함께 했다. 그리고 깊은 사랑만을 전하려 노력했다. 아이는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지금 중3이 된 아들은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와 '엄마, 좋아'하고 나를 꼭 껴안고는 한다. 힘들 때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아들 곁을 지킬 것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자니, 셜리번 선생님과는 대조적으로 나를 키운 선생님의 기억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6학년, 동갑내기 사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강원도에 살고 있던 사촌은 갑작스런 엄마, 아빠의 부재로 네 자매가 친척집에 한 명씩 뿔뿔이 흩어져 지내게 되었다. 택시기사를 하던 아버지의 뺑소니 사고로 인한 수감, 갑작스런 어머니의 암 선고와 죽음. 연이은 충격을 겪은 아이 곁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몇 년을 함께 지냈다. 아이의 아버지가 출소를 하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사촌은 전학을 준비했다. 전날 아이는 아버지에게로 먼저 갔고, 다니던 학교에 전학 관련 서류를 그 다음날 제출하게 된 상황이였던 것 같다. 늘 가게일로 바빴던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고, 나는 방과 후에 사촌의 반이였던 6학년 1반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께 서류를 드리자, 호랑이 같던 풍채좋은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고함을 치셨다.

"니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애 편에 이걸 덜렁 보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가서 니 엄마 오라고 해!"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온몸에 불길이 번져드는 듯한 무서운 불호령 앞에 서있어야했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그렇게 말해야만 했을까. 즉각적이고 직설적이고 거침없던 선생님의 말에 나는 부족한 엄마를 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서러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기 초였다. 학부모 상담이 행됐고, 엄마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한 다음 날이였다.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무섭기로 유명했던 노처녀 선생님이다. 당시 학교에서 불리던 별명은 '미친 보라'. 보라색 옷을 유난히 좋아하셔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선생님 앞에 섰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어제 어머님을 뵈니 니가 공부하는데 어머니 도움을 받지는 못 할 것 같더라. 너를 많이 믿으시던데, 너가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다고 고등학교 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어. 어디 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

선생님이 말씀하신 진의를 파악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무쏘의 뿔처럼 열심히 하자는 말씀이셨을까. 그렇다면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 했을까. 지켜보겠다는 말과 니 엄마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말만 머리에 맴맴 돌았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짐을 지주셨다.

 

아름다운 셜리반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왜 이 옛날옛적 기억이 떠올랐을까.

셜리반 선생님이 헬렌 켈러의 삶을 변화시킨 것처럼, 내가 만난 선생님들도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것, 사람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다룰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것. 나의 선생님들은 나에게 이런 교훈을 남겨주셨다.



한 사람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일 수 있다. 한 사람으로서의 내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과 용기를 나눠주는 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최소한 곁에 있는 가족에게만은 꼭 온기를 나누는 '한 사람'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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