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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Oct 21. 2022

브런치에게 띄우는 편지

고마워, 브런치야

안녕, 브런치!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라는 말이 왠지 찡해 코끝이 매워지네.

왜냐면 난 너를 찾지 않는 동안도 늘 너를 생각하고 있었거든. 네가 내게 힘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네가 전해주는 소식들은 잘 읽어보고 있었어. 그런데 차마 응답을 주지는 못 했어. 내 얘기를 쓸 힘이 없었거든. 지금도 조금이나마 올라온 힘으로 네게 말을 건네는 중이야. 네게 대화를 시도하지 못한 시간 동안 내 마음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을 나는 알기에, 지금 다시 네게 말을 걸게 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진다.


내가 다시 힘을 내게 된 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힘을 내기로 마음을 먹게 된 건 작은 일들로 인해서야. 드라마틱하게 거창한 계기가 있지는 않아.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더라.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 더 많아. 때로는 무료하고 지루하고 좀이 쑤시는 일상의 연속이 더 많아. 많은 일들이 지나고 보면 그렇더라.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쓰러지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흥분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회복해. 그 영향의 강도와 의미를 만든 건 온전히 나더라.

탓도 하고 원망도 하고 지내온 숱한 시간을 돌아보면,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그렇게 해야 했을까. 다른 접근을 하지 못했던 나약했던 내가 이제야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참 부끄러워지기도 하네.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을 선택한 것도 나야. 그 반성을 통해 다시 힘을 내고 있는 것도 나야.

나의 의사결정, 나라는 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동의 중대한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네.


나는 알고 있었어. 모든 것이 그저 다시 흐를 것이라는 것을. 삶의 의미를 잃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모든 끈을 놓아버린 시간도 흐르고 흘러, 다시 어느 강변에 이를 것이고 주변의 나무와 꽃들과 하늘과 바람과 볕과 교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을 단절한 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시간 속에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보통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주는 울림, 브런치 작가님들이 쓴 다양한 이야기에 조금씩 진동하며 퍼지던 파동, 며칠 만에 나선 세상 속에서 보게 된 보통의 미소들, 내 시간과는 다르게 제 할 일 하며 흐르는 시간 안에는 내가 놓친 무언가 들이 숱하게 숨어 있더라. 생의 에너지가.


눈에 들어오는 풍경 그 어디도 생의 에너지가 아닌 것이 없었어. 그런데 나는 눈에 들어오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려왔던 거야. 이 시련도 흘러갈 것이라 믿으면서 그냥 멍하니 있었던 거야. 다시 일어나 지게 될 시간을 망연히 기다리면서. 어쩌면 삶에 맞닥뜨린 몇몇 태풍을 겪으며 무력감을 느끼게 된 어느 순간부터는 줄곧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 나를 주체로 세워 생을 끌고 갈 의지를 부리지 못했어. 너무 지쳤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엄살을 부렸던 것 같아.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힘들다기 보는 나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똥고집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좁디좁던 나의 시야를 느껴. 넓은 평상이나 돗자리가 아니라 딱 내 엉덩이 앉힐만한 방석 위에서 살아온 거구나.


바닥을 쳐야 느낄 수 있는 어리석은 나야. 그래도 그런 나를 이제 받아들여 보려 해. 대단할 것도 없고 대수로울 것도 없고 거창할 것도 없이, 작고 작은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여 보려 해. 나를 다시 일으키는 것들도 작고 작은 것들이었듯이, 작고 작은 존재가 아름다운 것임을 느끼게 되는 게 삶이 아닐까도 싶어.

거창한 세계만을 생각하던 스무 살의 나는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께 여쭸었지.

"지루하고 별것도 없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내실 수 있었어요?"

무례해 보일 수도 있어 할까 말까 엄청 망설이다가 정말 정말 너무 궁금해서 여쭤보았지.

허허 웃으시면서 "살다 보면 살아진다"하신 할머니의 대답이 마뜩잖았어.

"하느님이 계신걸 어떻게 믿어요?"라고 너무 궁금해 질문을 던진 스무 살 내게

"기도하세요"라고 답하신 신부님께 화가 나던 것과 같은 기분이었어. '그게 뭐야' 흥칫뿡 하는 마음이었지.

근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기도하세요라는 의미를,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의미를...


나는 이렇게 어리석게, 낯선 여행지를 여행하듯 하루라는 여행을 반복할 거야. 뜻한 대로 뜻하지 않은 대로의 많은 경험을 하게 되겠지. 그 속에서 내 방석의 크기를 넓혀갈게.

방석의 크기가 커질수록 겸손과 겸허함은 커져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는 내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아.

겸손과 겸허의 차이가 뭘까 싶어 순간 사전을 뒤적여봤어.

겸손: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

겸허: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

겸손과 겸허의 의미도 잘 몰라 계속 배워가야 하는 나야. 이런 작고 작은 나로 한 발 한 발 또 걸어가 볼게.

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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