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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일 1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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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Apr 12. 2024

1 일 1 날

어느 조용한 집에 돌아오기까지







며칠 전부터 참 목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부분이 많이 뻐근했습니다. 얼마 전에 남편에게 선물한 주홍빛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는 가운데, 저는 일주일간 새벽에 꼭 한 번씩은 잠에서 깨곤 했어요. 이게 바로 찌뿌드드한 느낌이라는 걸 깨달은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결심을 실천하기로 합니다.


아, 목욕탕에 가자. 혼자서라도.


이상하게 온천 생각이 자꾸 나더라니, 다 쓰지도 못 한 일기장은 3월부터 어딘가에 처박혀있고, 일은 쌓여가는 가운데 아아, 다 필요 없으니 몸을 그냥 뜨거운 물속에 밀어 넣고 싶었나 봅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른 일정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본가에 다녀온 오늘입니다. 산이 보이는 곳에서 둘이 마주 앉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다 못해 바람에 마구 흩날리는 걸 보고 있자니, 좋더라고요. 다른 감상은 필요 없이 정말 좋기만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의식주를 완전히 독립하자 이제는 엄마도 저의 다른 '친구들'처럼 제가 먼저 전화 연락을 해야만 목소리를 듣고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음을, 오늘은 이상하게 많이 실감하는 날이었습니다. 둘이서 아무렇지 않게 다녀오던 목욕탕도, 오늘은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의중을 살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다른 약속이 없으셨던지라 데이트 성사!


목욕을 끝내고 나와 뺨에서 나는 엄마의 화장품 향기를 맡고 있자니 실은 이걸 원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라 엄마와의 그런 시간. 남편은 언제나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저의 본가에 동행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둘만의 값진 시간. 아버지는 바쁘셔서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아까 옷 다리고 계시는 걸 보니 얼마 전에 같이 닭칼국수 먹다가 웃긴 이야기 하면서 낄낄댔는데, 그 생각도 나고. 집에 계셔서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도 들고요.


전에는... 곤드레 나물밥이 뭡니까. 햄과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었습니다. 그걸 벗어난 지 겨우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오늘 받아와 냉장고에 채워 넣은 반찬들은 나물, 전, 멸치, 과일 등등... 결혼하면 들를 때 살림 다 털어가게 된다던 지인의 말을 안 믿었는데 어느새 이것저것 새로 한 반찬들을 챙겨주시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선배들 말은 어느 정도 믿어야겠더군요. 그냥... 마치 친구 집에 들러서 밥을 얻어먹고 떠나는 '친구의 입장'이 된 것 같아서 묘했습니다. 반쯤은 불효녀 같은 기분도 느끼고. 한사코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에 사는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벚꽃이 다 떨어졌는데 덕분에 오늘은 연둣빛 잎을 많이 보고 왔습니다. 엄마가 말씀하셔서, 언제부턴가 봄이 오면 연둣빛 잎은 꼭 찾아내서 눈에 담아두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나의 버릇을 만드는 사람이자 내 삶의 영원한 뿌리인 사람들. 엄마와 아빠.


혼자 집에 돌아와 차근차근 반찬을 정리하고 나니 아파트 창으로 노을이 들어오는 게 보입니다. 엄마의 갈색머리처럼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한 집에서 남편을 기다립니다. 


이상하리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봤네요, 여기에다. 그래도 괜찮겠죠? 오늘 에너지를 1개월치는 충전하고 왔어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가 그런 날이었기를...


멀리 기차가 지나가네요. 얼마 전에 찍은 벚꽃 사진들을 몇 장 두고 갑니다. 차도에서 찍은 거지만 밝은 꽃의 기운은 전달되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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