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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4.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1)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또 그 꿈이다. 나의 팔인데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고 나의 다리인데도 내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그 꿈에서 나는 온 몸이 무언가에 묶여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 오로지 내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건 얼굴 속의 표정이요, 그 표정마저도 무기력해진지 오래다. 처음 그 꿈을 꾸었을 때만 해도 온 얼굴을 찌푸려가며 조종에 대항하려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젠 그것조차도 소용없음을 나는 안다. 꿈을 꾼 건 거의 1년이 다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나를 조종하는 이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자마자 잠결에 시계를 봤을 때는 5시 50분이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6시 5분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따르릉 거리며 울고 있는 시계를 끄고는 침대 위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리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어도 아무리 포근한 이불을 덮어도 몸은 여전히 뻐근했다. 철야를 한 것도 아니고 낮 동안 무리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일찍 잠을 청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어깨며 허리며 온 몸이 무거웠다. 특히나 팔과 다리는 어찌나 저릿저릿한지. 밤새 무언가에 묶여있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난 듯 그 저릿함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 저릿함을 풀어내고자 팔을 움직여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스트레칭으로 온 몸에 내려앉은 무거움을 풀어내려면 아마 반나절은 걸릴 듯싶었다. 나는 여전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자동적으로 칫솔에 치약을 짜 양치를 시작했다. 9시까지 보건소에 도착하려면 피곤한 몸을 푸는 여유는 없었다.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고 나면 밥 먹을 여유는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이 있었던가? 아 맞아 어제 저녁에 멸치 볶음을 다 먹었지. 오늘은 그냥 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가야겠다.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치약 거품이 게거품처럼 부글부글 넘쳐흐르고 있었다. 물에 만 밥을 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입 속의 넘쳐흐르고 있던 거품을 타악 뱉어냈다.          


 바깥 날씨는 차갑고 시렸다. 두꺼운 코트 안에 카디건까지 껴입었지만 코트와 카디건 사이의 틈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시퍼렇게 날 선 바람은 그 사이로 파고들어 와 내 살을 에도록 했다. 특히나 지하철 입구 계단에는 그 어느 곳에서 부는 바람보다 강렬했다. 진공청소기 마냥 무엇이든 다 빨아들이는 기세로 불어 대는 바람 때문에 차갑게 식어있는 벽을 잡으며 걸음의 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계단 한 칸 한 칸을 내려갈 때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온 탓인지 생각보다 일찍 지하철에 도착한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부터는 굳이 서둘러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가 몇 발자국 더 걸으니 광고물이 한 가득 붙어 있는 게시판이 서 있었다. 게시판에는 ‘공무원 시험 대비 강의. 단기 속성. 서둘러 수강하세요!’, ‘취업 특강. 강남 유명 강사진이 당부하는 취업 대비 전략!’의 문구가 쓰인 광고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누군가는 이 광고물을 보며 앞날에 대한 걱정에 한숨만 내쉴 것이고 누군가는 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수많은 공무원 관련 학원 전단지를 보며 어느 학원에 가야 제대로 된 시험 문제 엑기스를 내줄지 이것저것 제가며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1년 전만해도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을 테지. 순간 저 틈에 끼어 어떻게 해서든 합격하려고 아등바등 거렸던 지난날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끔찍함이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지난날이 어쨌든 간에 지금의 나는 저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 셈이니 더 이상 저런 전단지를 보며 앞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고 있다. 직업을 가지고서도 언제 잘리게 될지 불안해 할 필요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없는 체력까지 붙들어 가며 직장에 눌러 앉을 필요도 없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 누구도 나의 직업을 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거나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걱정 섞인 말은 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친척에게서 받을 부담스럽고도 끔찍한 취업에 관한 질문 세례를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 내 나이 또래에 느낄 법한 무거운 압박을 나는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보건소 직원으로 근무한 지는 약 1년이 다 되어 간다. 행정학과를 다니고 있던 나에게 졸업 후 공무원 취직은 당연한 절차였다. 사실 수능 원서에 행정학과를 써냈던 것도 우리나라의 행정 업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닌 그저 공무원 취직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3학년을 마친 후 휴학계를 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복학 후로도 시험공부를 조금씩 병행했다. 그리고 졸업 후 공무원 공부를 마무리하고 시험을 치렀고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되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나의 꿈이었다. 왜 공무원이 되고 싶었느냐면, 정확하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주위의 추천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얻음으로써 행복해지기를 바랐기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추천해 주셨다. 주위의 친척들 또한 부모님처럼 그 어느 직장보다도 공무원을 추천했다. 그 이유는 안정적이고 현실적이기에. 어린 나보다 사회 경험이 많은 그들의 의견에는 분명 그럴 말을 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나 또한 주저 없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했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하철 게시판에 붙어 있는 광고물들을 보노라니 이 광고지들을 보고 걱정할 사람들보다는 행복한 편에 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행복한 건 확실히 맞는 거겠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처럼 시험에 합격이 될까 안 될까 하는 걱정에 하루하루를 불안해 할 필요도, 직업 없는 청년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주눅들 필요도 없으니까.      

 공무원 광고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하철 게시판을 지나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 개찰구 까지 이르는 길에는 시선을 끌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은 아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켜 바쁜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는 지하철 측의 배려일 것이다. 그 배려 덕에 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 한 번 돌릴 시간마저도 단축시켜 더욱 바쁘게 움직일 수 있는 혜택을 누렸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지하철이 평소에 친히 배풀던 배려를 깜박 잊은 모양인지 계단을 내려온 후 곧장 개찰구로 걸으려 했던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지하철의 마지막 계단에서 열 걸음 남짓 떨어진 곳으로부터 개찰구 까지 판넬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개찰구 까지 이르는 길에는 지하철 특유의 무미건조한 바람과 차가운 공기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하늘에서 갑자기 뚝하고 떨어진 것 마냥 느닷없이 펼쳐져있는 판넬의 행렬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은 내게 거부감을 일으키기 보다는 왠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했다. 


 언제부터 이런 전시가 있었던 걸까? 분명 어제만 하더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항상 텅 비어 있는 지하철 광경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눈앞에 있어도 그냥 지나쳐 왔던 걸까? 아니면 서둘러 내려가는 출근하는 인파들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걸까? 불친절하게도 전시 일정이 적힌 포스터나 종이는 찾을 수가 없었기에 전시가 오늘부터 시작된 것인지 혹은 그 전부터 열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인지 전시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진 듯 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개찰구 까지 길게 이어진 행렬을 주욱 둘러보았다. 사진전이라도 열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판넬에 세워져 있는 것은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선의 형태가 정교하지 않았고 색감이 또렷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림인 듯했다.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단순한 형태의 선은 투박함보다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었고 사실적이거나 선명한 색감과는 다소 거리가 먼 몽환적인 느낌의 부드러운 파스텔 톤 빛깔은 그림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을 그린 걸까? 판넬과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탓에 판넬에 걸리어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에 칠해져 있는 은은한 파스텔 톤이 자아내는  포근함과 따스함만은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따스한 분위기가 품고 있는 그림의 내용이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저 그림 속에는.     


“어이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휴. 정말 미안해요 아가씨. 출근길인데 늦을 것 같아서 서두르다 보니 그만. 휴. 미안해요 아가씨.”     


 판넬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계단에서 급하게 뛰어 내려오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하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괜찮다는 말이 나왔지만 꽤 세게 부딪혔던 지라 그 말을 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꽤 찌푸린 모양이다. 부딪히자마자 고개를 돌려 마주친 중년의 남자는 잠시 내 표정을 살피더니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뛰어오느라 급해진 숨을 억지로 고르며 다시 한 번 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이구. 이러다 정말 늦겠네. 아무튼 정말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던 도중 남자는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며 정말 늦겠다며 또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급하게 사라졌다. 왠지 모르게 그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급하게 뛰어가는 그의 뒤로 지하철의 여러 출구로부터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개찰구 쪽으로는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전보다 급격히 많아진 것을 보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출근하는 길이었다. 지하철 풍경의 익숙함을 깨뜨린 저 판넬 때문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조차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판넬에 정신이 팔려 걸음까지 멈추었던 나와는 달리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 중 이 낯선 존재를 의식이라도 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이 전시에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개찰구만을 응시하고는 뛰어가거나 혹은 바쁘게 걸어갔다. 혹시 어제까지만 해도 나 또한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문득 저 전시는 예전부터 진행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러다 진짜 늦겠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을 한 번 더 들쳐 매고는 판넬에 세워진 그림을 뒤로한 채 서둘러 개찰구로 향하는 인파들 속으로 합류했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 개찰구 아래로 이어져 있는 계단으로 여유롭게 내려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뛰기 시작했다. 아마 지하철이 방금 도착한 모양이었다. 혹여나 놓치게 될까 불안한 마음에 개찰구에 급하게 카드를 찍고는 그들을 따라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사람들을 따라 서두른 덕분에 지하철이 떠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전 역에서부터 앉아 있었던 사람들과 더불어 일찍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자리에 앉아 편히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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