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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련 Oct 17. 2022

다시 델타

-일상을 기리며-


  타이밍이 절묘하다. 이제 다시 시작할까 하는데 섣부른 판단이라는 듯 또 급습이다. 조이고 훌치고 덮쳐온다. 몸피를 바꾼 그놈은 금쪽같은 시간을 훔치고 있다. 물러날 때를 기다려왔건만 일터인 호프집으로 노래방으로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든다. 주인도 종업원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서로를 잇는 줄이 끊어지고 눈물의 서곡이 시작됐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이라니. 화려한 무대는 막을 내렸고 연출자도 배우도 정처 없는 길 위에 섰다. 


 다시 델타,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노력인가 오만하다 하여 되갚는 처절한 응징인가. 세계를 무대로 즐기는 그의 활약상을 무슨 수로 막을까. 주인공을 갈망하는 광기 어린 청년 같다. 오지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부진 몸짓이다. 교묘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인간이 쳐놓은 방어선을 진화를 거듭하며 단숨에 허물어버린다. 


 지구촌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밀어내는데 악착같이 버티고 섰다. 거머리라면 노할까? 그도 그의 생을 사는데 우리가 외려 편협하다며 비웃으려나. 그렇다고 공생이라니, 어림없는 일이다. 한쪽이 피를 봐야 끝나지 싶다. 그예 끝장을 보고야 말리라. 

 

 날 선 고무줄이다. 어느 한쪽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끊어지고 말 기세다. 잡았다했더니 자체진화를 거듭하는 그것은 절정의 순간에 뒷목 잡게 하는 얄궂은 신의 장난 같다. 얼마를 더 제물로 바쳐야 잦아들까. 그의 눈에 우리는 등짐 지고 아슴아슴 집을 향하는 한낱 개미 같을 진대, 새끼손가락만 눌러도 흔적도 없이 보내버릴 수 있는 사람 앞의 개미. 


 참으로 허약하다. 칠십억 인구가 백방으로 노력해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쩔쩔 매고 있다. 열에 셋은 소리 없이 잠입해 시간차 공격이다. 무차별 육탄공격을 퍼붓는 교활한 그것과 동행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처음 그가 찾아왔을 때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오만한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쯤으로 봤다. 죽자고 덤빌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근 이태가 지나는데 마땅한 출구가 없다. 개중에 신박한 전략이라 내놓기도 하지만 여지없이 힘을 잃고 만다. 부질없는 짓 그만하라 잠재워버린다. 길게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배짱이 이곳저곳에서 감지된다. 

 

 그렇다고 다시 고방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다. 비어 가는 곳간을 어이하리. 만나야 밥을 얻고 움직여야 미래를 기약하는데, 궁리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보다 먼저 그것이 달려가 사람에게 가는 길을 죄다 막아서고 있다. 

 신혼 초 가슴으로 날아든 불청객, 우람한 바윗돌을 닮았다. 숨이 끊어질 듯한 위기감. 암은 만나고 싶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그를 떼어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번 잡힌 덜미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작은 틈만 보여도 그 틈새를 비집고 여지없이 달려들었다. 허걱 허걱, 밀치고 외면하고 어르고 상납하면서 수는 하나뿐임을 절감했다. 끝내 동행을 약속했다. 


 그제 서야 온순한 양이되었다. 요즘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신하다. 오히려 이상신호 감지센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넘치다 싶을 때면 여지없이 작동하여 느리게 걷기를 청한다. 초대하지 않은 무례한 손님이지만 아랫목을 내줬더니 그도 양심이 있는지 제값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닦고 조이고 기름질이다. 

 그를 무조건 침입자로 비난해선 안 되겠다. 어느 지점에 있든 그도 그의 일을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느닷없이 달려들 때 방어할 수 있는, 허술하지만 듬직한 무기도 가졌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아닌가. 백신은 허무하게 힘을 잃을 때도 있지만 앞장서서 싸워줄 방패막 임이 분명하다. 


 한판 멋들어지게 칼춤을 추고 나면 그것도 시들하겠지. 기습한 암세포처럼 동행하다 보면 서로의 존재를 가여워할 날이 오지 않을까. 종착지가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는 길이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게 욕심이라면 부디 순해져서 하루빨리 동행해도 좋을 놈으로 변신하길 바란다. 

 그것의 날 선 몸짓에 힘없이 스러진 일상이여. 닫아건 문이 속히 열려 모두가 하나 되어 연주하는 현란한 하모니를 눈으로 듣고 싶다.


  꿈은 환상을 타고 단숨에 날아오른다. 온몸으로 젖어드는 태양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잔 부딪는 소리, 정겨운 웃음소리! 소리, 소리의 향연이 다시 일상이 되면 무감한 하늘에 감사하리라. 지루한 일상을 찬양하리라. 그날은 세상도 나도 긴 한숨을 몰아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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