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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련 Oct 25. 2022

유리벽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정물화가 되어 왁자한 거리를 스치듯 지난다.



 헐거워진 승강기 안이 저들끼리 아우성이다. 찌걱찌걱 덜커덩 쿵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열림 버튼을 찾아 손이 내달리는데 찾을 수가 없다. 가슴에 펌프질이 가팔라지는 걸 느끼면서 비상벨을 찾는다. 역시 대답이 없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뒷걸음질 치며 벽을 더듬는다. 엉덩이에 걸려든 차가운 철제 벽을 확인하고 토하듯 짧게 숨을 뱉는다. 손을 뻗으니 생명줄 같은 막대 봉이 가로누워있다. 난간을 하도 세게 붙잡아 힘줄이 불끈거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 버티고 섰는데 지각변동은 여전하다. 승강기가 덜컹거릴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래서 목청껏 외쳤다. “누구 없어요?”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사람들로 둘러친 아파트 한복판, 무원의 공간에 갇혀버렸다. 완벽한 고립. 얼마든지 이런 상황에 내몰릴 수 있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승강기 타고 내리기를 동네 마실 다니듯 했을까.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완전하게 결합해야 기계는 돌아간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오작동하거나 멈춰 서 버리는데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심 없이 외면해 온 결과인가, 보란 듯이 사각의 링에 유폐되었다. 덜컹거리는 승강기, 작동하지 않는 내부, 기척 없는 비상벨….

 시간의 정의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일초가 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찌걱찌걱 삐이삑, 반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드디어 인기척이 난다. 탁한 소리 몇 개가 겹쳐 들린다. 전날의 피로가 묻어나는 목소리라도 구세주가 따로 없다. 그러고도 한동안 쩌억 쩍 불협화음이 계속되더니 철컥 문이 열렸다. 살았다. 신의 손이 이처럼 따뜻할까. 구원자의 권위는 초라한 작업복을 뚫고 나를 향해 도도하게 다가왔다. 

 승강기가 다시 활기를 찾는다. 모두를 품을 듯이 하마 입을 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승강기는 잠시 절룩거리다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도 고립무원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세상 품에 안겼다. 성급한 봄 햇살이 아파트 벽에 기댄 산수유를 들깨우고 있다. 주변이 갑자기 일시정지 화면을 거쳐 새로운 화면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조금 전만 해도 지옥이었는데 새뜻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그러나 지나는 사람들의 활기찬 걸음이 낯설다. 천진한 천국이 그림처럼 진열되어 있을 뿐 생기가 없다. 여러 시선들이 지나는데 난 투명인간처럼 그들의 눈 밖에 있다.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정물화가 되어 왁자한 거리를 스치듯 지난다. 

 승강기를 빠져나오면서 살았다 긴 한숨을 쉬었는데 다시 투명한 유리벽이다. 손을 뻗어도 손끝이 그곳에 닿기도 전에 잘려나가고 없다. 소리는 밤바다에 묻히고 미처 퍼지지 못한 소리는 되돌아와 휑한 가슴을 쓰윽 베고 지난다. 날은 저무는데 집에 닿지 못하고 여전히 승강기에 갇힌 듯 숨이 가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장소만 옮겨왔을 뿐 가는 곳마다 유리벽이 성처럼 서 있다. 

 서둘러 집을 향한다. 따뜻한 불빛이 나를 안아주겠지. 낯익은 이들이 백색의 시간을 나른하게 즐기고 있을 게다. 익숙한 시선이 쓰윽 나를 스칠 테지. 그러면 또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안도감으로 그들 속으로 스며들겠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에게 무심한 하루가 전혀 낯설지 않은 일상으로의 복귀. 물 만난 솜처럼 아주 빠르고 자연스럽게 내 자리를 찾아갈 게다. 때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웃 보기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세련되게 스쳐 지나는 법도 안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이 행복하다 믿으며 나의 안락한 하루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타인을 배려한 일과표가 고장 난 양심처럼 구겨진 채 서 있다. 

 다음 날, 식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혼자다. 어제의 공포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나 보다. 홀로 남으니 다시 불안하여 안전한 공간임을 확인하고 싶다. 미처 치우지 못한 너저분한 식탁,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릇을 주섬주섬 모아 설거지를 한다. 일상이 뜨거운 물줄기로 쏟아지니 쉴 새 없이 나대던 심장도 제자리를 찾는다. 여전함을 확인시켜주는 일상의 일거리가 불안을 잠재우는 명약이 된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고 싶다. 잊고 지내던 친구를 불러볼까. 그러나 하나같이 거리가 멀어 만나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 안타깝지만 목소리라도. 폰을 누르려는데 바쁠 것 같은 그의 일상이 제동을 건다. 또 다른 친구를 생각한다. 소식 전한 지가 오래되어 안부를 묻다가 끝날 거 같다. 변죽만 울리다 말 전화는 부담이다. 훅 본론으로 들어가도 좋을 친구를 찾아본다.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높은 담벼락만 확인하고 마음을 거둔다. 가슴을 열고 허벅지게 엉기고 싶은데 여기도 유리벽이다. 생각하는 곳마다 우후죽순 솟아 있는 유리벽 세상이다. 평탄한 길에서조차 아슴아슴하여 자주 길을 잃곤 하였는데 곳곳에 버티고 선 유리벽 때문이었나 보다. 

 누구를 탓하랴. 몇 년을 살았어도 옆집에 사는 이웃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다 같이 승강기를 타면 어색한 눈인사로 당장의 불편한 공기를 바꾸려 했을 뿐이다. 이웃이 사촌이라니, 옛 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상처가 겁나 먼저 울타리를 치느라 바빴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깔끔한 관계를 지향했다. 남아도는 인심을 쟁일 곳간을 마련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달랑거리는 밑천 때문에 가파른 길목에서 늘 허기가 졌던 것 같다. 

 그래서 목젖까지 차오르는 여러 역할을 감당하다 보니 스스로 슈퍼맨이 되어야 했고 하루해를 넘기기도 버거웠다. 해결해야 할 일거리가 정량을 벗어나면 우왕좌왕 방향을 잃고 혼자 애쓰다 안 되면 풀이 죽곤 했다. 누구로부터 위로받고 다시 시작하는 호사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서 미리 단념해버렸다. 

 나의 하루도 열흘이 되고 일 년을 넘어 생의 후반부에 서 있다. 오늘 하루 무심히 살아도 인심은 그대로 찰랑댈 줄 알았다. 시작보다 끝이 가까운 지점에 서서 한 줌 뚝 떼어 들여다보니 그제 서야 선명하다.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꾹 다문 입, 살아남기 위해 도사리는 눈, 더 절박한 안쓰러운 얼굴이 낯설게 나를 응시하고 있다. 

 유리벽의 실체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고백한다. 스스로 걸어 들어가 유리벽이 된 슬픈 실존. 그나마 박차고 나올 용기 또한 내 안에 있으니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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