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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련 Oct 25. 2022

기류

무시로 빠져드는 깊은 수렁은 살아있기에 감당해야 하는 원죄 같은 것

 거미가 공중곡예를 한다. 창밖 허공에서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맛난 먹이를 쩝쩝거리기도 한다. 길이 아닌데 길을 내고 바닥이 없는데 견고하게 섰다. 창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 든다. 어느새 내게도 훅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4차원의 세계가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다. 

 거미는 여름만 되면 대가족을 데려와 시위를 한다. 그들은 한 낯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불빛 따라 춤을 춘다. 갈수록 호전적인 몸짓이다. 저러다 안방까지 잠식할 것 같다. 벌써 미세방충망을 뚫고 들어와 등 뒤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기분이다. 당장 요절을 내야겠다. 며칠 전부터 심하게 곡예를 하던 놈이 포착되었다. 빗자루를 들고나가 거미줄을 날렸다. 원추형 집은 갈가리 찢기고 한 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출렁였다. 한 가닥만 끊어버리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생명이다. 똑. 매번 이런 참사를 당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천 년 전 조상의 땅을 찾아 모여든 유대인들처럼 이곳이 저들의 땅이라 우기고 싶은 걸까. 그들과 언제까지 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지 걱정이다.

 거미줄의 정체를 확인하고도 4차원 세계를 다녀온 듯 아찔하다. 허공에서 공중곡예를 하는 거미를 보면서 눈의 한계를 절감한다. 우리는 모든 걸 볼 수 있다지만 지극히 일부만 볼뿐이다. 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거미줄처럼 보지 못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원래 거기 있다가 이제 여기로 온 것뿐인데 길들여진 시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황한다. 

 며칠 전부터 공중곡예를 하는 거미처럼 나를 기웃거리는데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놈이다. 굳이 4차원이 아니라도 끊임없이 노려보는 그놈의 시선이 따갑다. 머리 위 하늘에 먹구름이 이끼처럼 꼈다. 우산도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놈이 달려오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해야만 처마에 닿겠다. 마음이 급하다. 신발 끈도 점검하고 펄럭거리는 외투도 다잡는다. 그런데 허무하게 스쳐 지나가 버렸다. 다시 말간 하늘이다. 이렇게 그놈은 잔뜩 변죽만 울리다 맥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오늘은 심상찮은 기운이다. 그냥 지나칠 놈이 아닌 듯싶다. 열기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시야는 흐릿하다. 서걱거리는 가슴.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 같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 현실 공간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본다. 아들의 해맑은 얼굴도 떠올려보고 신랑의 실없는 농담도 되뇌어본다. 가족이 하나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던 즐거운 한 때를 떠올려본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고 조바심이 조여 앉는다. 넓게 휘장을 두른 검은 놈이 바짝 다가왔다. 감정은 하강기류를 타고 땅 끝으로 떠밀려 후미진 곳에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싯다르타가 인간은 고통을 안고 태어났다 했던가. 고통은 사는 한 겪어야 할 일이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우리 곁을 지키는 감정이어서 숨 쉬듯 그저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라 했다. 그것을 피하려 하거나 싸우는 건 참으로 무모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순간순간 엄습하는 어두운 그림자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다. 무시로 빠져드는 깊은 수렁은 사는 한 계속되는, 살아있기에 감당해야 하는 원죄 같은 것일지도. 

 그것이 오는 조짐이 어렴풋이 보인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알고 있으면서 속수무책 번번이 당하는 게 문제다. 운전대를 잡고도 어쩌지 못하고 달려오는 차에 몸을 내맡기는 꼴이다. 선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홀리기도 하고, 깊은 늪에서 발목 잡고 으름장을 놓을 때는 내 이성도 어쩌지 못한다. 

 삶의 대가라면 달게 받아들여야겠지만 하강기류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곤 하는 게 문제다. 인연은 귀하면서도 몹쓸 부분이 있다. 그를 알게 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내 편이 된 그들을 위해 행동지도를 그린다. 내 것과 그 외의 것들로 분류하고 그들을 위해 가열 찬 투쟁도 불사한다. 선택적 폭력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외의 것들이 모함당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명작 ‘어린 왕자’에서 왕자의 생각이 행동의 명분이 된다. 지구에는 숱한 장미가 있지만 왕자 별에 있는 한 송이 장미를 위해 지구를 떠나는 어린 왕자처럼. 

 그러고 나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만만찮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감정의 하강기류를 고스란히 받아 안아야 한다. 오늘도 인연과 신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좀 더 가진 자는 덜 가진 자와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기적인 결단을 한 친구를 두둔하고 말았다. 인연은 가치관보다 힘이 셌다. 오랜 시간 공들여온 말쑥한 신념을 가볍게 굴복시켰다. 사건이 해결된 후 돌아보니 그의 편에 서 있는 자신이 끔찍이도 싫다. 냉정한 현실 탓이라 우겨 말하지만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 

 인연은 지켰으나 초라한 자신이 도드라진다. 폭풍이 지나간 바다처럼 주위는 잠잠해졌으나 내면에는 우울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하강곡선을 그리며 끈 떨어진 연처럼 추락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을 전환시킬 의욕이 없다. 다시 상승기류를 타려면 침잠하기까지 내달렸던 두 배의 시간이 필요할 터, 한동안 침울한 생활이 계속될 것 같다. 

 감정은 완벽한 4차원이다.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그의 길이 있다. 몸이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기도 하고 마음이 몸의 기류를 움직이기도 한다. 기억할 것은, 아무리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일이라도 명분이 없으면 기분은 조용한 밤 침묵의 시간에 소리 없이 찾아와 나를 굴복시키고 만다는 사실이다. 신념을 외면하면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가 언젠가는 그것에 매복당한다. 단말마처럼 다리가 꺾여 갈 길을 잃는다. 

 오늘은 멋진 하루가 펼쳐질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충만하다. 잘 살아낸 어제의 내가 가져온 선물이 아닐까. 상승기류를 탄 기운을 잘 받들어 모셔야겠다. 곁에 있는 이에게도 스며들어 징검다리 역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고 보면 감정 기류의 향방도 내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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