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남편에 대해 좋은 말만 하고 떠난 사람
갑자기 친구의 어머니 부고 소식을 접했다. 남아있는 유일한 초등학교 친구인데, 호주로 유학을 떠났던 그 친구와는 성인이 되기 전에도 가끔씩 한국에서 만났었고, 호주에서도 내 첫 셰어하우스를 구해줄 정도로(워킹홀리데이비자로 호주에 살았었음) 가깝게 지냈었다. 친구는 20년도 1월 우리 아빠의 장례식장에도 와 줬었고, 내가 취직하기 전엔 만나서 맛있는 밥을 사줬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시간을 내서 만날 정도로 긴 연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라 참 고마운 게 많은 사이다. 그런 그가 힘든 일을 겪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장례식장에는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퇴근 후 바로 가평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머님에게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리고 친구와 가족들을 만났다. 힘들었을 텐데도 웃으며 맞이해 주는 친구와 아버님을 보고 있자니 애잔함이 밀려오더라.
친구는 혼자 밥을 먹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앞에 앉아 있어 줬다.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고 한 달 전쯤 귀국해서 가족들이랑 계속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친구는 상주라서 자리를 계속 비울 수 없어 돌아갔고 그 사이 친구의 아버님이 옆 테이블에 앉으셨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 얼핏 들어보니 아버님은 어머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부부가 살다 보면 사소하거나 큰 여러 일들로 서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보이고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어머님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아마 아버님 또한 좋은 성품을 지니셨기 때문은 아닐까.
친구는 항상 쾌활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거침이 없는 성격을 가졌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다. 내가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귀중하다며 이름 앞에 보석을 붙여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외국물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 덕분인지는 그 비중을 알 순 없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표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뿜어내니 주변에 사람들이 항상 많다. 아마 아버님과 어머님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다시 사랑을 전파하며 사는 것 같다.
사랑이 있는 한 우리 삶은 정말 견뎌낼 만하고 살아볼 만하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꼭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주고받기를 잘 못하는 건 아니다. 잘 맞는 연인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두면 우리는 언제나 진실되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깨닫는 하루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