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나는 얼마만의 확률로 서로를 알게 되었을까?
첫 번째 소개팅을 하기 전부터 친구인 P가 소개해주고 싶은 남자가 있다며 클라이밍을 같이 해보자고 했었다. 괜찮은 사람인데 같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나와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소개팅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우선 첫 소개팅남을 만나보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첫 소개팅남은 사실 만났을 때 애매함이 커서 두 번은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애프터 신청을 받아들였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만나봐도 되는 걸지 의문을 품으면서 P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소개팅 후 애프터 신청에 응했다는 사실을 말했음에도 괜찮다고 하기에 P와 남편, 그리고 그 남자(H라고 하겠다)와 함께 운동을 다녀왔다. H는 나보다 한 살 어렸기 때문에 누나동생 사이로 지낼 수도 있는 그런 편안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편하게 만났다지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낯을 가리기도 하지만 첫 소개팅남을 대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걸지 못했다. H역시 낯을 가렸다. 4시간을 같이 운동하면서 나눈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좋은 기운이 있었다. 그가 친구와 하는 대화의 말투, 표정, 운동할 때의 모습을 귀와 눈으로 담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웃을 때였다. 미소를 평소에 잘 짓지 않으면 웃을 때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 굳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가 평소에도 잘 웃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 그와의 만남은 일단락되었다. 첫 소개팅남과는 애프터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고 연락도 간간이 주고받고 있었다. H는 P에게 내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고 나 또한 첫 소개팅남과 식사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다. 우선 첫 소개팅남과 애프터 만남을 가지고 난 뒤 정중히 거절을 하고, 친구에게 H의 연락처를 물어볼지 생각해 볼 심산이었다. H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를 만난 뒤 며칠간 아침에 눈을 뜨면 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기심과 떨림이었다. 첫 소개팅남을 우선 만나서 정리한 뒤 연락해야겠다는 다짐은 무너졌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친구에게 연락해 H와 둘이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첫 소개팅남에게는 좋은 분을 만나시라고 잘 거절했다.
그렇게 H와 연락을 하게 되고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좋은 느낌은 틀리지 않는법!
내가 만약 클라이밍을 가자는 P의 권유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첫 소개팅남과 잘 되었더라면
내가 만약 P와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고등학생 때 P와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약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 보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그를 알게 되었구나.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특별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귀중하고 특별한 일인지를 잊지 않을 때 서로를 더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인연도 특별히 여기는 순간 스며드는 인연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의 댓글과 공감은 제가 글을 쓰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