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사랍에 있던 글
C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뭔지 물었다. 몇 해 전인지,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행을 하다 만난 C를 한국에서 꽤나 만났기 때문에 기억이 겹쳐 그게 언젠지 잘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C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
그는 항상 내가 생각한 것 밖의 대답을 하거나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세계 이곳저곳을 굉장히 오래 여행했고 특이한 음식을 좋아하며, 커피와 사색, 산과 바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의 취향은 알지만 그의 계획은 모른다. 자유로운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그에게는 더 이상 계획을 묻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야만 마음이 안정되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성취해 나가야만 인생을 잘 사는 건 아니지. 그렇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일 반성하고 열심히 계획을 세운다.
그의 말에 마음이 편해졌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편하게 해 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고민 투성이에 걱정이 많다. 인생에 어려운 게 뭐 그리 많은지 싶을 때가 있다. 다가오지 않을 일을 걱정하며 마음에 걱정의 숲을 짓는다. 숲이 아주 울창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의 중심을 놓치지 않게 해 줄 '나'를 단련시킨다.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주변 사람에게 내 걱정을 털어놓으면서. 걱정의 숲을 짓지 않고도 나 자신이 숲이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숲이 누군가 잠시 쉬어갈 만큼 아늑하고 따뜻해진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숨을 고르고 쉴 수 있는 숲이어야만 할 것이다.
익숙한 것들에 감사하고,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상심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자. 인생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는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은 비우자.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라는 말은 말 그대로 계획없이 살아라 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기 보다는, 생애주기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더 관심을 가지라는 뜻은 아닐까. 20대에는 무엇을 하고, 30대에는 무엇을 가지고, 40대에는 무엇을 이룰 것. 그런 것들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지는 것 말이다. 자유로움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 결코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전에 들은 말을 떠올리고 곱씹는 일은 참 즐겁다.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