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남편의 글에서 보셨다시피, 저를 학교에 실어 나르기 위해, 물론 본인도 좀 더 편하게 실어 나르기 (?) 위해 남편은 비행기 연장을 감수하면서 한번에 운전면허를 따고 개선장군 같이 시애틀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대중교통이라고는 30분에 한 대 오는 버스가 전부인 (그나마 학교로 가는 노선이 있지, 왠만한 주택가는 버스가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이 곳에서, 운전면허 취득은 우리 가정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지요. 운전여부는 삶의 반경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정도를 현저히 다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글에 이어서 좀 더 보태자면, 정말 대중교통이라는 말이 걸맞는 한국과 달리 이 곳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가용 운전자에 대비해 정말 손에 꼽습니다. 물론 시애틀은 미국 다른 도시들과 비교 했을 때 대중교통이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고, 출퇴근에 많이 이용을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도심 한 가운데 업무 지구로 가는 일부 소수 버스노선 외의 다른 지역의 버스 속 모습을 보면 (이 마저도 노선이 진짜 손에 꼽습니다), 많은 수가 여러 이유로 차를 운전할 수 없거나 차를 장만할 형편이 안되는 어려운 사람들, 노숙자들이 많이 타고 다닙니다. 그래서 버스는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약간은 있습니다. 이 곳에서 차는 감히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고, 많은 경우 운전면허 취득은 성인이 되는 당연한 관문 중 하나라고 인식됩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겠지만 평생 버스를 한번도 안타본 사람이 부지기수인 이 곳이지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시애틀에서의 삶을 돌아볼 때 마다 우리 가정을 위한 남편의 여러 노력, 그 용기와 수고에 참 감사한데, 운전면허 취득은 그 중 최고였지요.
저 역시도 우리 가정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리고 오늘도 계속해서 주~욱 긋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 시애틀 생활 11년차에 일관성 있게 "무.면.허" 로 버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사 뿐 아니라 친구사, 제가 다니는 직장사에 얼마나 환상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가는 이미 구전을 통해 널리 전파되어 이미 시애틀 한인 이민사에까지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 몹쓸 허세 개그가 다시 튀어 나왔네요 흐흐;;;).
제 직장이나 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나눌 기회가 있겠지만, 제 업무 중 중요한 부분 하나는 한 달에 5-8명 정도의 클라이언트의 집을 방문해 interview 형태로 진행되는 검사를 진행해, 워싱턴주 주정부의 메디케이드를 통해 재택간병을 받는 분의 수혜자격여부와 수혜 등급을 정하는 것입니다 (세부 정책은 많이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심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 같네요. 그렇지만 저는 공무원은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지역은 워싱턴주에서도 가장 인구수가 많고 넓은 카운티 (시를 몇개 묶어 놓은 행정구역)라서 차 타고 고속도로 달려서 40-50분 가서 산 속에 말 키우시는 클라이언트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무면허인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실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깡으로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ㅎㅎ 언젠가 저희 부서 약 50명의 직원 중에 버스 타고 가정방문 하는 여자가 딱 한 명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 적이 있었습죠. 어떻게 버스로 가정방문을 다니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제스쳐를 (아시죠? 양 손바닥을 하늘로 하고는 어깨를 으쓱하는 그 뉘끼~한 제스쳐 ㅎㅎ) 취하는 앞에 앉은 직원을 세상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며 살짝 이야기 해주었죠 "궁금하면 내 책상으로 와, 비결을 가르쳐 줄게!". 엄마가 한번만 더 먹으면 맴매 한다고 으름장을 놨는데도 사탕통을 몰래 뒤지다가 걸린 꼬맹이마냥 넋 나간 그 친구의 표정을 제가 한참이나 골려 먹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푸하!
사실 지금껏 감사하게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과 배려를 받고 있지요.
버스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일 때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커피 한잔 사주며 비슷한 경로로 가정방문 가는 친한 동료의 차를 얻어타기도 하고, 제가 버스로 갈 수 있는 도심지역의 클라이언트를 주로 배정해주는 수퍼바이저의 배려도 있었구요. 한국 처럼 정확히 매 10-15분마다 있는 버스가 아니기에 한번 놓치면 기본 30분 이상 약속이 지연되는데도, 책가방 들쳐메고 버스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오는 자신을 만나러 와주는 이 짠한 아시안 아줌마를 무한한 이해와 배려로 기다려주시는 마음 따뜻한 어르신들도 많이 계십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면 으례 몇시까지 집 앞으로 차 가지고 갈테니까 나오라는 친구도 있고, 늘 제가 미안해 하는 마음을 알아서 차라리 제가 버스타고 만나기 편한 다운타운이나 저희집 근처로 꼭 약속을 잡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저녁에 헤어 질 때 제가 버스타고 집에 가려면, "무섭게 생긴 니가 밤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놀래서 안돼" 라며 진심 90%인 짗굿은 농담으로 꼭 저를 차에 태워 집 앞에 내려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저의 발 역할을 해주는 남편이 있습니다. 둘 다 일을 하고 규정상 제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남편의 라이드를 받지 않지만, 퇴근 해 나오는 순간 제가 버스타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애써주고 잔소리 한 번 없이 온갖 약속에 데려다 주는 참 착한 남편이지요 (네, 위생관념은 안드로메다로 가끔 뻥! 날려주시는 남편을 대신해 차 청소를 맡고 있는 저에 대한 우짤 수 없는 의무감도 약간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럼 이 쯤에서 이 아주머니는 그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왜, 도대체 11년 동안 무면허의 똥고집을 고수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실 것 같습니다. 아...그런데 그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하니 세상에 마상에 벌써 주저리 글을 너무도 길게 썼네요. 지난 글에 오늘은 반드시 반으로 줄여 보겠다고 했는데... 참으로 쓰잘떼기 없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네 저란 사람이 이제 살짝 보이시쥬?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더 여러분을 좀 더 허무하게 만들자면, 제가 왜 면허를 따지 않았는가?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왜 못 땄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참 못됐네 그랴...ㅋ) 혹시 이 아주머니가 운전면허 시험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서 챙피해서? 아뉩니다 여러분. 저는 떨어지는 것도 개그로 승화해 온 동네에 광고를 하는 녀자로 절대 그 이유는 아닙니다 ㅎㅎ 한 단어로 그 이유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종의 트라우마인데, 언젠가 머지 않아 기회가 되면 제 몹쓸 직업정신을 좀 가미해서 이 트라우마와 운전면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숨겨져 있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한 글을 따로 써보고 싶어서 입니다. 뭐 두구두구! 엄청난 트라우마나 스토리가 숨겨져있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ㅎㅎ, 다만 그런 이야기는 몹쓸 개그 쪼매 걷어내고 여러분과 나누면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입니다. 여러분, 다음에 또 글 보러 와주세요 라고 유인전략 뭐 이런거 절대 아닙니다 (라고 쓰지만 냄새가 나네요 흠흠).
대신, 저는 이 버스에서 마주친 시애틀에서의 좋고도 우중충한 삶의 모습을 나눌까 합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제일 좋은 점은 운전을 안한다는 점입니다 (엥?). 운전을 안하니까 손도 자유롭고 눈도 자유롭습니다. 앞을 볼 필요가 없지요. 그러니 자유롭게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합니다. 환상적인 여름의 파란 하늘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 보는 것과, 창 밖으로 보이는 호수와 작은 배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버스를 타는 사람만이 누리는 호사입니다. 운전 경력 10년차인데도 핸들 부서질라 두손으로 꼭 잡고 정면을 향해 쉴새없이 레이저를 뿜어내고 있는 남편을 보면, 이 예쁜 동네 풍경을 나만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늘 참 미안합니다. 가끔 글자 본지가 쪼매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에는 몇달 째 가방에 넣고 다니는 그러나 언제나 43페이지에 머물러 있는 책 한권을 꺼내 몇 단락 읽어주다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이라 쓰고 순식간에 레드썬! 으로 빠져드는) 여유도 갖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가끔 제가 보는 한글책을 곁눈질로 보다가 슬그머니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나 "캥볶음"도 가봤어 라며 말을 거는 뽀글뽀글 귀여운 백발의 노인분들과 짧지만, 식은땀 나는 대화를 할 때도 있습니다. (네 20분만에 결국 알아낸 저 캥볶음은 뉘집 반찬이 아니라 경복궁이었습니다). 이 버스안에서 주변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홍조 가득 띈 얼굴이 되어 순식간에 한국 홍보대사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저희 집 앞이라 내려야 하는데도 끝나지 않는 그 분의 이야기를 황급히 끊고 어색하게 헤어지는 날도 있죠.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온 갖 곳을 누비면서 자연스레 외진 길까지 기억하게 되고 장소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서, GPS를 켜고도 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를 매일 몸소 실천하고 계신 우리집 아즈씨를 도와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도 곧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제가 10여년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면 제일 좋고, 감사하고도, 괴로운 것은 냄새(?) 입니다.
여기 버스는 정말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하고 꼬리꼬리한 냄새가 있습니다. 시애틀에 우기가 시작되면, 버스는 그야말로 오랜 숙성을 거쳐 짜잔!하고 갓 식탁에 내놓은 것 같은 초절정 꼬리꼬리함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우산을 거의 쓰지 않는 이 곳 사람들은 버스가 오는 30분 내내 비를 쫄딱 맞고 서 있다가 자신의 몸에서 나는 전매특허 향수를 마구 뿌려주며 버스에 오릅니다. 아마 저 역시도 저에게는 안 느껴지는 진한 마늘여인의 향기를 풍기며 우아하게 자리에 앉겠지요. 사실 이 냄새에 큰 기여를 하는 분들 중 하나는 노숙자분들 입니다. 종일 비오고 축축하고 추운 길에 앉아 있다가, 버스 기사에게 사정을 하거나 혹은 누가 버린 버스 환승 티켓을 주워서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겨울의 6-7시 쯤이면 버스에 오릅니다. 양 손에 땟국물이 밴 침낭과 짐 몇 꾸러미를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라 자정까지 노선을 순회하는 버스 제일 뒷자석에 기대어 몸을 녹입니다. 히터까지 세게 들어오는 겨울이면 정말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의 냄새가 진동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 속 냄새가 아니었다면 저는 제게 익숙하고 편한, 제 냄새 스러운 시애틀의 모습만을 보고 살았을 듯 합니다. 저희 집근처 식품점 직원용 앞치마를 가방 옆구리에 끼고 버스에 올라 제 옆에 앉자마자 다리가 저린지 자꾸 주물러 대는 한 젊은 아가씨의 하루를 상상합니다. 종일 동네 수다쟁이 아줌마들의 수다를 받아주며 서서 물건 계산을 하느라 힘들었겠구나. 역시 마켓 가면 그네들의 영어 개그를 이해 못해서 말 걸기를 주저하는 나는, 그대를 잠시나마 쉬게 해주는 참 좋은 고객이었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조용히 칭찬도 해봅니다 ㅎㅎ 추운 날씨에 손이 새빨게 지고 콧 끝에 콧물이 맺힌 저 애기랑 엄마는 비도 많이 오는데 유모차까지 끌고 어딜 다녀오나 궁금합니다. 평소 보약 먹듯 챙겨다녔던 가방 속 쪼코 과자가 왜 하필 이 때는 없는지 제 스스로 머리도 쥐어박아 봅니다. 버스에 올라 제 옆을 살짝 스치는 그 몇 초 사이에 이미 강렬한 냄새 폭풍을 일으키고 버스 제일 뒷자석 구석으로 간 이 버스 단골 아저씨( 회사 근처에 자주 보는 노숙인분)는 오늘 왜 또 잠바를 안 입으셨나, 잃어 버렸나? 슬쩍 뒤 돌아다 봅니다. 가기 싫어도 좀 노숙인 센터에 들러 잠바라도 하나 얻어 입으시지 에이 참....속으로(만) 잔소리를 합니다.
사람이 타니까 사람 냄새가 나는 버스입니다.
진한 향수 냄새, 아가에게서 나는 비릿한 우유 냄새, 김언니의 마늘 냄새, 웃긴 냄새, 고되지만 보람찬 하루의 냄새, 삶의 고난이 녹아나는 냄새, 하루를 또 새롭게 시작하는 기대에 찬 냄새가 매일 새롭게 뒤섞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 냄새는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가끔 모르는 이에게 손을 내 밀게 하고, 제가 살아오는 동안 경험을 통해 이미 수 차례 검증해 확고하다 믿었던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다시금 돌아 보게 하기도 합니다.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단어는 사는 행실히 부끄러워 감히 입에도 올 릴 수 없지만, 사회복지사로서 삶을 이 곳에서도 이어나가는 동안 이렇게 버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그들에 대한 저의 이해를 넓히고, 제가 가진 편견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를 아주 조금 더 무너뜨리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해주는 귀한 배움이 됩니다. 게대가 매일 개정판이 나오는 엄청난 배움의 장소이지요 ㅎㅎ
남편이 무거운 마눌을 열심히 실어 나른 덕분에 무사히도, 훌륭하지 않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ㅋㅋ 버스를 타고 직장 생활을 하며 지난 몇년간 시애틀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지난 7개월 가까이 COVID-19 으로 재택근무에 돌입하고, 클라이언트 인터뷰를 한시적으로 전화로 하게 되면서 감염 위험이 가장 컸던 버스도 그 후로 한번도 타지 않게되었습니다. 분명 몸은 편하고 좋은 점도 많은데...가끔 그 꼬리한 냄새나는 버스가 생각이 납니다. 솔직히 뭐 아주 그립다 이런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텅텅비어 동네를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있으면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 아가씨는 우찌 일을 다니는가, 캥볶음 할머니는 건강하신가 궁금도 하고. Essential Trip Only 라고 전광판에 메세지를 켜고 다니는 (꼭 필요한 통근과 같은 필수 이동 외에는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라는) 버스를 보면서, 갑자기 확 추워진 날씨에 단골 노숙자 아저씨는 어떻게 버스라도 얻어 타고 몸을 녹이셨나 싶습니다. 냄새란게 그런가 봅니다. 형체는 없어도 기억으로 진하게, 꼬리~하게 파고드는 그 무엇? ㅎㅎ
버스에서는 맘껏 사진도 찍을 수 있지요
P.S 오늘은 지난번 글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난 번 글의 두 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저의 모습을 보셨고, 뻔뻔하게 앞으로도 글을 아마 못 줄이것 같다는 똥배짱 섞인 예고도 듣고 계십니다 ㅎㅎ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다른 글을 쓰다보니 어쩌면 제 글의 내용이 제목과 평행선을 타는 너낌적인 너낌이 좀 있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