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Kyoo Lee Oct 05. 2020

아내 학교 보내기 (by 이진규)

아내가 시애틀에서 처음 학교에 가던 날입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아내는 저와 결혼하는 바람에 석사과정을 수료만 하고 시애틀에 와서 유학생 아내의 삶을 살다가,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미국 여러 주에 흩어져 있는 몇몇 학교에 합격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다니고 있던 학교에도 합격을 해서 우리 부부는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글 “아내 학교 보내기”는 어느 남편이 아내의 진학을 위해 어떻게 뒷바라지?를 하고 도왔는지에 대한 글은 아닙니다. 아내는 혼자 알아서 진학을 잘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제가 따로 쓸 말은 없습니다. 대신, 이 글은 phisically 제가 어떻게 아내를 학교로 날랐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9년에 처음 시애틀에 왔을 때 저희가 선택한 집은 쇼어라인(Shoreline)이라는 시애틀 바로 북쪽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서울과 일산과 같은 관계라 할까요? 제가 다니게 될 학교에 다니고 있던 분과 연결이 되어서 그분이 살던 아파트의 렌트를 넘겨받게 되었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학교로부터는 차로 한 30분 정도 거리였고, 버스를 타면 한 번 갈아타고 50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학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집을 잡았더라면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래도 한적함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학교 주변보다는 조금 떨어진 근교가 더 맞았던 것 같네요.


어찌 되었든 이 집에서 시애틀 생활을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미국에서는 차가 발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국만큼 대중교통이 촘촘하게 잘 짜여 있는 건 아니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버스도 다니고 하는데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운전을 배우고 차를 사는 일을 크게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애틀에서 차는 정말로 발과 같이 중요한 것이어서, 차가 없이도 버스를 타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있었지만, 늦은 밤에 버스가 일정보다 늦게 와서 30분 혹은 1시간 넘게 기다리다 보면 통학 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기 일쑤였습니다. 버스 노선이 닿지 않거나 너무 불편하게 되어있어서 가지 못하는 곳도 많았는데요, 그래서 다른 도시에 있는 한인 마트를 가거나 어느 집에 초청을 받아 갈 때에는 꼭 다른 분이 저희를 태워주셨어야만 했습니다. 또 다른 도시에 있는 교회를 갈 때에도 그랬습니다.


우버가 있는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급한 일이 있거나 밤늦은 시간에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타는 것도 편리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택시는 길가에서 저를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꼭 전화를 해서 불러야만 했고, 제가 있는 곳의 주소를 말해주어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밤늦게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너무 안 와서 택시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학교의 이름을 말하면서 정문에 있다고 하니 정확한 주소를 달라합니다. 학교의 주소는 안 외우고 다니기 때문에 그 전화를 그냥 끊어야만 했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제가 운전을 하고 차를 사야만 할 것 같은 이유가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도 선뜻 차를 사지 못했던 이유는 제가 운전을 전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핸들 한 번 못 잡아본 상태였습니다. 아마 그래서 최대한 운전을 하지 않고 버텨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봄에 아내가 우리 학교 사회복지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고, 가을부터는 둘이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문득 이제는 정말로 제가 운전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 써야 할 때가 온 것이지요. 가을부터는 아내를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더불어 저도 학교에 가고) 마음은 운전에 대한 저의 느긋한 마음에 확실한 마감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첫 단계로 필기시험에 해당하는 knowledge test에 합격을 하니 1년 동안 운전면허 있는 사람이 옆에 타면 운전을 할 수 있는 Learner’s permit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개인 운전 강습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배운 후 이제는 도로주행 시험을 봐야 하는데, 여기서 살짝 막힘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였는데요, 하나는 주행 시험을 시험 보는 사람의 차로 보기 때문에 차를 구해야 했다는 점이고, 둘 째는 주행시험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꽤 많았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부터 다들 운전을 합니다. Learner’s permit을 받은 후 부모님을 옆에 태우고 운전 연습을 한 후에 부모님 차로 주행 시험을 보러 갑니다. 딱 이런 모델만 예상하고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저같이 면허가 없어 당연히 차도 없고, 또 면허가 없어 렌터카를 빌릴 수도 없으며, 운전을 하는 부모님과 부모님의 차가 미국에 없는 사람에게는 주행 시험에 사용할 차를 구하는 것부터가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또한, Learner’s permit 받을 때 면허 사무실 밖에서 주행시험을 위해 떠나고 돌아오는 차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한 심사관이 탑승했던 차량의 운전자들 모두가 우수수 불합격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심사관을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주행 시험을 치고 싶은 마음이 이때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시애틀이 위치한 워싱턴주가 미국 최초로 한국과 운전면허 협정을 맺어서, 한국의 운전면허증을 워싱턴주의 면허로 바꿔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목표는 가을 전에 한국의 운전면허를 받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 해 여름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면허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면허 공부하던 아내는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일정이 많아서 우리의 계획보다 늦게 잡힌 주행 시험을 못 보고 미국에 다시 들어가야 했지만, 저는 비행기 일정을 연장해서 주행시험을 통과한 후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참 오랫만에 간절히 쫓기는 마음으로 원했던 일을 성취하였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인 11월 추수감사절 즈음에 친하게 지내던 누님이 타던 차를 정말 착한 가격에 넘겨받을 수 있었습니다. 꿈꾸던 일이 이루진 것이지요.




그 후에는 제가 운전을 잘 못하고 미숙하여 이런저런 실수를 해서 속 끓인 적은 있었어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다른 분께 라이드를 받던 때와 다르게, 삶의 반경과 경험들이 정말 넓어졌습니다. 차가 있어서 아름다운 워싱턴주의 풍경들도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시애틀에 우버도 생기고, 2009년에는 공항과 다운타운 (회사들이 밀집한 시내 중심가) 까지만 운행을 하여 탈 일이 별로 없었던 경전철이 한두해 전부터는 학교까지 연장이 되어 우리의 생활권으로 확 들어왔고, 다른 도시들로 계속 확장을 하며 연장될 계획이 줄줄이어서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차가 필요한 이유들이 느리지만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도 처음 차를 사서 그 차를 등록하기 위해 덜덜거리며 면허 사무실로 운전을 하고 가던 그 어느 하루와, 휴일이라 주차비가 면제되었던 로스쿨 앞 주차장에 우리 차를 세우고 뒷 유리창에 학교 스티커를 붙이던 아내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어느 하루와, 장을 봐서 차에 싣고 오면서, 차 없을 때 비오는 날 큰 휴지 더미를 우산처럼 머리에 이고 깔깔거리며 집으로 걸어오던 일과 버스 타고 장 보러 다니면서 겪었던 짠한 이야기들을 아내와 함께 추억처럼 나누던 어느 하루가 너무 아련하고 좋아서 아내 학교 보내기 위해 기를 쓰고 운전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Seattle Gray by 김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