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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Sep 27. 2020

Seattle Gray by 김언니

(이진규: 아내가 쓴 같은 제목 다른 글을 나눕니다)


한 두 해 전 부터였는지...문득 페이스북에 재미나게 올라오던 지인들의 글과 사진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그 전 부터 였을텐데, 뭐든 느린 제게는 그제서야 썰렁한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왈 사람들이 이제는 "인스타그램"을 한답니다. 그 말을 듣고도 1년여가 지난 올 해 들어서야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 마저도 남편 포함 5-6명의 페이지로 가서 어쩌다 올라오는 새롭고 멋진 사진을 구경하는게 전부입니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화려하게, 떄론 우아하게 사진 한 장에 응축된 주인장의 오만감정과 전달하고자 하는 간결한 메세지가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저 처럼 말 느리고 행동 느리고 이해 느리고....그래서 뭐든 이렇게 줄줄 써가며 찬찬히 소화시켜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속도나 응축력이 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틈틈이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럴 시간에 설거지를 한번 더 하라며 열정 넘치는 새내기 작가(?)에게 찬물을 팍팍 끼얹었습죠 흠흠. 그러다가 남편이 저 보고 같이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웃긴 사람이니까 재미나게 글을 쓸 것 같다면서... (?). 가끔 지는 노을 보다 아주머니 감성 폭발해 주저리 몇번 써내려간 페이스북 글 몇개가 전부인 저는 됐슈! 를 외치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거절에 거절을 거듭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정말 웃긴 사람이니까요 푸하하!

결혼 12년차, 남편에게 왜 나랑 결혼 했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제가 너무 웃겨서 결혼했답니다. 이게 무슨 똥방구같은 소리인지 원. 이제는 웃긴애의 깊은 의미를 더 이상 캐묻지 않지만, 사실 남편이 말한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의 엉뚱함과 몹쓸 개그 본능이죠. 찰나의 기회만 주어지면 어떻게든 개그 본능이 튀어나와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는 말을 마구 던지거나, 그마저도 상대의 반응이 없으면 저 혼자 눈물 콧물 나오도록 주책스럽게 웃다가 황급히 마무리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독자인 여러분을 어떻게든 웃기고 싶은데 글 쓰는 기술이 그 열정 넘치는 몹쓸 본능을 따라가지 못함을 알기에 저는 웃픈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그 몹쓸 개그 본능이 때로는 제가 생각하는 것, 제가 몸 담고 있는 가정, 직장 및 여러 사회 공동체, 한국이 아닌 미국 시애틀 이 곳에서의 일상을 글로 옮길 때 모두에게 웃음만을 주려하다보니 과장과 가식으로 살짝 포장되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앞섭니다. 언제가 정지우 작가라는 분이 쓰신 "인스타그램엔 절망이 없다" 라는 책 제목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인터넷 요약을 보고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과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분석해서 쓴 책이라는 것 정도만 알지, 사실 읽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책의 방향성과는 별개로 그 제목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딱 제 마음에 담아 두었던 오랜 고민을 누군가 살포시 대신 말해준 것 같아서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제 페이스북을 들여다 봐도, 다른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봐도 이 시애틀의 긴긴 우기동안 계속되는 우울함과 우중충함과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린 뼈마디를 노곤하게 만드는 쨍한 캘리포니아의 햇빛 같은 포스팅이 더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사진과 글을 포스팅하는 분들을 평가하거나 혹은 무엇이 옳다 그르다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것이 절대, 절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당연히 누군가에게 소통의 방향성을 강요하거나 제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네, 저는 사실 소심한 구석이 꽤 있어서 남의 평가에도 민감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잘 곱 씹고, 왜 그런 몹쓸 개그를 던져서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밤새 이불킥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아지매입니다. 이런 제가 다른 분의 포스팅에 대해 감히 이러쿵 저러쿵 할 깜냥도 없거니와, 저 역시 그런 평가에서 자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큽니다. 다만, 남편과 이 곳에서의 삶을 나누며 이 지지리도~ 길고 아직은 부족함 투성인 이 글을 통해 독자이신 여러분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몹쓸 개그 본능을 살짝 걷어낸 아주 조금 더 담백한 삶을 나누어 보고 싶다는. 들여다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옆집이지만 가끔 뭐하며 사나 궁금해지는. 사실 내 뱉은 말처럼 꾸준히 잘 할 자신감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 하나 쓰는데 뭔 이런 거창한 자기 다짐이 필요한가 싶을 만큼, 네.. 요런 소심함도 있습니다.



약 4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없이 청명하고 시원한 시애틀의 여름 날씨는 정말 아름답고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화장을 하지 않는 저는 이 4개월 동안 일년치 주근깨를 모두 수확할 만큼, 어떻게든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돌아다닙니다. 그 한 여름밤의 꿈 같은 4개월이 지나면, 나머지 8개월은 우중충 하기로 유명한  Seattle Gray 의 시기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이 우울한 나날 중에도 해가 쨍한 날도 있고, 장화로 흙탕물을 냅다 걷어차며 느끼는 통쾌함도 있고, 비옷을 툭툭 치며 내리는 비소리에 마음이 곧잘 센치해 지기도 하고,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에 온몸의 긴장이 녹아내리는 그런 날들도 있습니다. 그런 좋고도 우울한 이 곳에서의 평범하고도 또 다른 사람 냄새 나는 저와 남편의 일상을 같이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미국 생활 11년차에 가방끈만 긴 둘이라 모아놓은 돈이 에게게~수준이라 아직 집이 없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집이 생기면 저는 꼭 우리집 현관에 한글과 영어로 이렇게 새겨서 들어 오는 사람이 보도록 하겠다고 남편에게 수 차례 큰 소리 쳤습니다.


" 만민이 많이 먹고 많이 웃는 집"


시애틀에서의 어느 하루 매거진에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이 저의 몹쓸 개그와 가끔은 시애틀의 우중충함이 섞인 평범한 글들로 한번 더 웃고, 쉬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은 절반으로 줄이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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