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속 배움

그래, 그 시간들도 커리어였어. 그리고 지금도 계속.

by JinKyoo Lee

변호사로 일을 한 지 4년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1년이 더해질 때마다 변호사-고객의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 더해지고, 함께 일을 한 동료변호사의 수가 더해지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이슈들과 그 이슈들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목도하는 경험이 더해집니다.


1년이 가지는 무게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점점 더 배워갈수록,

내가 또래의 다른 변호사들보다 5년내지 10년 정도 변호사로서 일을 한 경험이 적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옵니다.


그럴때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래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내 커리어의 시작은 왜 이렇게 늦은걸까?


(아주 가끔) 지금같이 변호사로 일을 계속한다면 나는 왜 유학까지와서 박사학위 공부를 한걸까?


어찌보면 간단한 답이 가능한 질문들이지만 계속 만나고 되풀이해서 생각하게되는 질문들입니다.



김민섭 작가의 책 "지방시"

이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지방시"라는 제목의 인터넷 연재로 처음 알게된 김민섭 작가의 책.


김민섭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여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여타의 박사과정생처럼 조교로 일하고 시간강사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참 새로웠습니다.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교와 시간강사는 대학의 노동자인데 대학은 이들을 대학 직원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교수로 임용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대학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조교로 일을 할 때에는 대학원 공부의 일부로 당연히 생각을 했고,

저는 경험이 없지만 시간강사를 하며 강의하는 선배와 동료들을 보면서는 이 또한 교수가 되기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내포하는 기약 없는 불확실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고, 결국에는 그 기약없음이 주는 두려움이 제가 박사과정 졸업 후에 시간강사라는 길을 걷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지방시" 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진, 대학의 강의 중 많은 부분을 전담하면서도 대학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강사법의 입법으로 이어졌습니다.

(강사법에 대한 논의는 지금 대학의 현실을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대학원생, 조교,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의 문제와 별도로,


이들을 대학의 노동자로 생각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위한 과정내지는 중간단계로만 여기는 현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게 되니 '연구자의 커리어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수로 임용되어야 비로소 연구자의 커리어가 완성되는 것이지."

"교수가 언제되느냐가 중요하지 그 전까지 어떤활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교수가 쓰는 논문과 교수 아닌 사람이 쓰는 논문은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어."


멀리 갈 것 없이 저부터가 이렇게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졸업하기까지 공부하고 일했던 모든 시간들이 "커리어"였는데 교수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 모든 커리어가 없었던 것처럼 생각을 했습니다. 내 커리어의 시작이 늦은게 아니라 단지 커리어를 중간에 변경한 것 뿐인데 스스로 커리어를 지워버리고는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한걸까' 자책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저의 첫 번째 질문과 새로이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네가 잘못한게 아니야, 하는 위로와 함께.




지방시를 쓸 당시에 김민섭 작가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방시가 책으로 출간된 다음에 그는 대학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김민섭 "작가"가 되어 계속 글을 씁니다.


저에게는 작가의 이러한 선택이 큰 용기를 줍니다.

대학 밖에 오히려 더 큰 배움의 장이 있다는 그의 판단에 일면 동의가 되고,

대학의 교수가 아니어도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인문학을 계속할 것이라는 그의 결정에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실제로 김민섭 작가는 그 후로 우리사회를 본인의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책을 몇 권이나 집필했습니다. 그 책들을 통해 그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단면들에 대한 인문학을 저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그는 또 참 좋은 선생님입니다.


대학 밖에서 매일의 일터에서 계속 배울 수 있고,

교수가 아님에도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진심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사실이 저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말을 건넵니다.

저도 계속 공부하고 글을 써 갈 생각입니다.




나와 같다면 같은 길을 걸었던 동료의 솔직한 성찰과 고백을 통해 배움을 얻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계속 이 기쁨을 이어가기 위해 저는 김민섭 작가의 다음 저서 "대리사회"를 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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