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이후의 여백

by 진경


오후 세 시,

계단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중력이 내 몸을 놓는 순간,

발뒤꿈치는 허공을 긁고,

팔은 허공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때 나는 알았다—

중심이란,

부재가 이름을 얻은 것임을.


0.3초의 낙하 속,

몸은 비로소 몸답게 무너졌다.


바닥에 닿은 혀끝에

쓴맛이 번졌다.

피도 살도 아닌,

깨어진 언어들이 굴러다녔다.


“이것이 균형이구나”

부러진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뼈는 어긋나고,

살은 부어올랐으나

처음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일어서려 할 때마다

중심은 사라졌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달아났다.


그러나 그것이 중심이었다—

고정되지 않는 것,

매번 새로 찾아야 하는 것,

그 불안정함 속에서만

서 있을 수 있는 것.


석 달 후,

깁스를 풀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발끝이 조심스럽게 바닥을 찍을 때마다

중심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이제 나는 안다.

균형이란 완성되지 않는,

끝없이 잃어가는 궤적임을.


그 상실의 자국이

곧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임을.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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