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모서리에서

by 진경


오후의 빛은

벽 모서리를 타고 내려온다.

그날도 그랬다.


도서관 옆 느티나무가

투명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긴 호흡으로 시간을 재워두었다.


기억은 이상하게도

말보다 침묵을 먼저 불러온다.

말해지지 않은 장면들이 더 오래 남고,

마침표 없는 순간들이

빛보다 먼저

가슴을 물들인다.


누군가의 어깨를 스치던 햇살은

지금쯤 어느 도시 유리창 너머로 미끄러져

이름 모를 얼굴들의 뺨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겠지.


찬란한 것은

늘 가장자리에서 익는다.

정면이 아닌,

비껴선 시선 속에서

진실이 제 몸을 드러낸다.


청춘이란

풍경을 감상하던 시간이 아니다.

그 풍경 안에서 서로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을 계절을 새겨 넣은

끝나지 않는 의식이다.


*眞鏡

이전 01화사이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