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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14. 2021

상무님이 시키신 과제와 현업에서 제안한 과제

달라도 너-무 달라


 내 맘대로 생각했던 귀여운 때^^


 연초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것저것 제가 제 마음대로 '우리 회사는 이런 것들을 하면 좋겠는 걸!'하고 생각한 것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목표를 수립했습니다. 과제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뭔진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최종고객의 사용자 경험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니즈를 발굴하고, 그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다'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업무를 점차 진행하다 보니 본부장님, 부문장님, 팀장님께서 지시하신 일, 현업에서 제안해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면서 연초에 세운 목표나 과제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고요.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런데 상무님이 시키신 과제와 현업에서 제안한 과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완전히 그 성격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상무님이 시키신 과제는 '우리도 Data 기반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 사업과 관련 업체들 간의 Data를 모아 그에 대한 Ownership을 가져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현업에서 제안한 과제의 경우 '물류 조직과 영업 조직이 A 업무를 하는 데 이에 관한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봤더니, 이런 문제가 있었다. IT 기술이나 Tool을 검토해보니 이런 걸 활용하면 되겠던데, 담당자들이 모여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식입니다.

 

 전자는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실무자들이 구상하고 채워나가야 합니다. 돈과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요. 데이터 포털이랄지 빅데이터 센터 같은 것들은 당장 기사 몇 개만 찾아봐도 수백, 수천억 원을 들여서 추진된 프로젝트입니다. Data라 하면 가장 잘 떠오르는 국내 사업자는 네이버나 카카오입니다. 이들은 거의 전 국민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편의성을 제공해왔습니다.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데이터를 모았지요. 최근에 그 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인 사업모델을 선보이고 있고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생존을 위해 그려야 하는 큰 그림인 것은 확실하고요.

 반면 후자는 과제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무엇을 보고 들어봐야 할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가 딱딱 정해져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엽적이고 그 확장성이 그려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 업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것들은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도 10개의 제안 중에 1-2개 정도는 괜찮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기작업을 전자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DB화, 어쩌면 새로운 기회의 발굴까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과제들입니다. 물론 이것도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부서와의 논의를 통해 대강의 가설이 그려지는 것들이지요.



현업 주도적 과제가 잘 되는? 좋은 이유!


 저는 현업 주도적 과제를 많이 하고 있어서 그런지 Bottom-up으로 제안되어 시작한 프로젝트가 더 편하긴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가닥이 잘 잡혀서 그렇기도 하지만, 현업 주도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담당자들의 열정이나 니즈가 확실해서 조금만 으쌰 으쌰 해도 맥이 끊기지 않고 진행이 잘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요즘 진행하는 중인 프로젝트는 선임, 사원 3명이 모여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것이 소문이 잘 나면서(?) 더 발전된 케이스입니다. 매니징을 하고 있는 제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기능도 있어야 현장의 반응이 더 있을 것 같아요."

라고 하면, 실제로 그 기능을 사용할 담당자가

 "오, 그거 괜찮은데요? 그렇게 하면 저희 물류 조직에서도 더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지원 가능하신가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개발자가

 "그림을 그려주세요. 한 번 봐야 느낌이 올 것 같아요. 아... 이렇게? ...한 번 해볼게요!"

라는 식으로 진행되곤 합니다. 더 높은 수준을 지향함으로써 발생하는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찰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열심히 하고, 그렇게 서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Top-down 프로젝트, 문제는?


 한편, Top-down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Bottom-up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비해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경우를 종종 목격했습니다. 또는 초석을 잘 다져두어도 지속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과제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임원급 이상의 분들이 제안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실무자가 구상을 하게 되면서 그 목적과 수행방식에 대한 합의가 뚜렷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또는 인력, 시간, 예산이 부족할 때도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은 그 사이 담당자가 바뀌기라도 하면 새 판을 짜게 됩니다. 확실한 업무 프로세스, 사용자 친화적이면서도 견고한 시스템으로 안착시키지 않으면 그 자체가 흐지부지 되고, 그 위에 다른 시스템이 덕지덕지 붙어서 시스템을 굴리기 위해 수기작업이 필요한 요상한 모양의 업무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야 되는데ㅎ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상무님이 시키신 과제의 예로 들었던 Data 기반의 의사결정 같은 것들이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현업 주도적 과제는 시작 단계의 간단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입니다. 작은 과제들이 결국 한 지점에서 모여야 한다고, 큰 지향점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그림에 디테일을 어떻게 더해나가면 좋을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머리 터지게 고민합니다(퇴근 후 저녁 시간 놓칠 수 없어...). 마냥 부딪혀보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지, 남을 따라 하다 보면 되어 있는 게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긴 하지만, 평평한 땅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뎌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모멘텀이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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