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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22. 2022

코시국에 회사원으로서 고마웠던 것 한 가지

내 시간을 지키는 힘

나는 코로나가 싫다. 코시국에 사는 것이 매우 싫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고마웠던 게 있다. 회식을 안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각종 제한이 풀리는 바람에 회식을 다시 할까봐 걱정인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회식이 다시금 엄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코시국이 도래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회식을 했다. 그리고는 맨날 한숨을 푹푹 쉬거나 눈물을 훔치면서 집에 들어갔다. 미련한 1, 2년 차 사원은 생각했다. 회사생활은 원래 그런가 보다, 그런데 퇴사할 용기는 아직 없고, 마땅한 이유를 찾아 거절도 못하는 스스로가 정말 밉다고.


회식이 싫었던 것은 사람이 싫다거나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게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도, 조금도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날이 없었기 때문에 싫었다. 선배들은 나 같은 후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보라고 한다. 요즘 일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걱정한다. 고충을 털어놓는다. 선배는 본인의 현재 고충 또는 과거의 경험을 보태 조언을 해주고, '사는 게 그렇지, 뭐, 우리같은 한낱 직장인들이 별 게 있겠냐?'하고 끝난다. 또래끼리 만나면 '야,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냐? 어떡하냐? 유튜브 언제 시작할 건데?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곳으로 갈 순 없냐? 월급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이직해야 하는데'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다음에도 또 똑같은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기보다는, 매번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한탄을 한다. 고민을 털어놓고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들에게 위로를 받는 것, 또는 나와 같이 미생으로 살아가는 다른 미생들끼리 위안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런 회식도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하다. 매일같이 하던 회식을 어쩌다 한 번씩 하게 되니 진심으로 리액션을 하고 즐길 수 있기도 했다.


회식을 하지 않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단순히 회식을 안 한다는 것 그 이상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존재여야 하는지, 일상을 어떻게 꾸리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운동을 제대로 된 하루 루틴으로 만든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루가 더 의미 있어지고, 생동감이 생겼다. 퇴근하고 나서, 출근하기 전에는 회사 생각을 차단할 줄도 알게 되었다. 회식을 많이 하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아침에는 회사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밤에는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잠들었으니 생각이라는 걸 할 겨를조차 없었다. 자아가 없었다. 나는 회식을 안 하고 나서야 회식을 거절할 제대로 된 용기가 생겼다. 회식을 덜한 것이 나를 위하고 내가 회사를 증오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는 내가 회사를 싫어하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시간을 지킬 힘이 생겼다. 코시국에 그것만큼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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