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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Sep 13. 2021

화초에게 들이닥친 온실 파괴

즐겁게 살고 싶다

 가을이 오나보다. 창문을 열면 훅 느껴지던 눅눅하고 더운 공기도, 이제는 찾으려 해야 느껴진다. 나는 집순이인데, 요 며칠은 집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 생각할 정도로 날씨가 좋다. 하늘이 파랗고 청초하다. 구름은 하얗게 빛난다. 지하나 건물 안보다는 지상의 건물 밖으로 나다니고 싶다. 타인의 날숨을 들이마시며 코 앞의 행인을 피하기에 여념이 없는 곳보다는 농도가 옅은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저 멀리 누군가의 집도 보이고, 어쩌다가는 한강도 보이는 길을 걷고 싶다. 가열차게 달려오던 시간이 어느덧 올해의 반절을 훌쩍 넘겼다. 이 한 해를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나는 휩쓸리던 사람이다. 그 휩쓸림은 정성스레 쌓아가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흘러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신분에서 최선이라는 말을 굳건히 믿었고, 주변 이들이 걱정을 내세우며 지시하던 방향, 뭐 하나 튀어나올 것 없이 무디고 평범한 방향으로 걸어가면 무언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는 줄도 몰랐으니,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이가 찼지만 줏대 없는 어른이 되었다. 내 주관은 아직도 생기지를 못했다.


 대학생 때까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늘 새롭고 짜릿했달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날은 다 지나가고, 입사한 지 햇수로 3년을 채워가던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차올랐다.


 "뭐야, 나 왜 살지?"


 왜 살까? 일단 태어났으니까 산다. 어떤 사명이 있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꼬맹이 때는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간 사는 게 꽤 재밌었다. 그래서 사는 게 재밌으니까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재미가 사그라드는 시기가 와버렸다. 살 이유를 못 찾는다고 해서 심각해질 일은 아니었다. 나의 왜 사냐는 질문은 '오옹~? 나 왜 살지이~?' 하는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운 것이었고, '살 이유가 없네....'라며 공허함이나 허탈감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왜 사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딱히 없어 보인다면 살아갈 이유를 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왜'와 '어떻게'가 혼재된 상태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잘 살고 싶고, 즐겁게 살고 싶다. 일단 그 전에는 왜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내 인생이 꽤 재밌다고 생각했던 건지를 생각해봐야겠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을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주도적으로 산 편은 아니었다. 으레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 스물 다섯 정도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학을 다니는 십수 년 동안은 아주 즐거웠다. 미래가 기대되었고, 과거의 시간 동안 그토록 꿈꾸던 자유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도 다 하는 뻔한 활동이었지만, 과 활동,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등 매번 다른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즐겁고 희망찼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취업 준비 기간은 내 인생에 손꼽히는 암흑기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을 남의 눈앞에 진열해두고 평가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취업을 하는 게 맞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나는 온실 속 화초였다. 크게 힘든 일 없이, 좌절하는 일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온실 속 화초가 온실 붕괴를 맛본 것이다! 주인이 나를 갑자기 매물로 내놓으면서 내 이마에 '급매'라고 써붙여버렸다. 아니, 애초에 주인이라고 믿고 따랐던 이들이 사실은 주인이 아니었다. 다른 온실의 주인들은 나를 보러 오지도 않는다. 생존 본능으로 화초에는 갑자기 다리가 자란다(?). 어기적어기적 초록 괴물이 온실의 문을 두드린다.


- 똑똑, 제가 살 새로운 온실을 구하는데요! 저는 커다란 나무가 되고 싶고요~ 산성 물을 먹고도 꽃을 피운 경험이 있어요.

- 여기는 너같이 작은 애는 눈에도 안 띌 곳이야. 어딜 넘보는 거냐.

- 우리 온실은 사람 발길이 적어서 별로 사랑받지 못할 텐데, 괜찮겠니?

- 물을 연간 2리터만 줄 거야. 가능하겠니?

- 너의 열정은 알겠지만 다른 좋은 화초들이 많더구나.

- 나무? 허허. 그래그래 부디 크으으은 나무가 되렴.


 성취의 기준을 세우는 주체가 나였던 것이 갑자기 낯선 타인으로 바뀌니 강하다고 생각했던 정신이 흔들렸다. 멘탈이 강하다 믿었던 것은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낯설고 싫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화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취업이  돼서가 아니었다.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인적성,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이게 맞나 싶은 회의감에 종종 휩싸였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길을 찾지 못한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순응하면서 일단 취업을 하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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