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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Nov 22. 2021

내 뜻대로 옷을 사고 입어보니 느껴지는 것들

3개월 완성 패션 독립

 돈만 쓰면 되는 게 옷 입는 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상의를 사려니 그에 맞는 하의도 사야 했고, 신발도 필요했다. 똑같은 흰색 운동화도 종류가 다양했다. 패션은 옷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악세서리 같은 것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처음에는 돈을 팡팡 쓰는 게 꽤 즐거웠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세한 감정은 즐거움이긴 했다. 평일에는 온갖 앱을 뒤져 입을 옷을 찾아보고 나에게 어울릴 법한 스타일을 찾아보느라 눈이 아릿해질 정도였고, 주말에는 산책 삼아 갈 수 있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예전보다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를 조금 뒤적거려보면 옷을 잘 입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감각이라는 게 쉽게 길러질리 없겠지만, 패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든 법칙이나 공식같은 것도 있고, 예시도 충분해서 따라하는 걸 잘해보면 해볼만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자켓이나 셔츠, 슬랙스를 좋아하는 정도의 선호는 있어서, 그걸 토대로 색이나 실루엣의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웠다. 패션 유튜버나 스타일리스트들은 정말 멋있었다.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써?' 할만한 디테일들을 모아 멋진 꿀팁들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 그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아 더 빛났다. 나는 옷 입는 법을 배우려고 했는데, 세상에 포진한 멋진 사람들을 보며 성공한 삶을 사는 법도 어렴풋이 배운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달 정도, 옷을 내 뜻대로 사고 입어보니 몇 가지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 그냥 내 기분이 좋았다. 하루하루의 시작이 재밌어졌다. 어쨌든 나는 출근을 하는 사람이니 어찌됐든 매일 옷을 입고 현관을 나서야 하는데, 전에는 옷을 주워 입고 출근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챙겨 입고 출근을 하는 느낌이다. 대충 입는 옷이 아니다 보니 하루의 기분도 전반적으로 상향되었다. 원래 입던 스타일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 의지로 산 옷이라는 게 달랐다. 옷장에도 내가 좋아서 산 옷들이 가득 들어차니, 뭘 입을지 아침마다 설렜다. 그렇다고 엄마가 사준 옷을 버리진 않았다. 엄마가 사준 옷들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다가 퀄리티가 좋은 옷들이라 버릴 게 없었다. 난 특이 취향도 아니고, 반항을 하는 게 아니라 독립을 하는 거기 때문에, 엄마가 사준 옷을 굳이 갖다 버릴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조화롭게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소화 하는 것이 더 독립의 취지에 걸맞았다.

 둘째로, 회사의 동료나 선배들한테 농담처럼 '저 이제부터 패션리더 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하고 다녀서 그런지 친한 사람들이 변화를 눈여겨 보고 알아봐줬다. '오, F/W 시작 된 거야?'랄지, '야아 요즘 너 못 보던 옷 많이 입고 온다?'라는 말부터 '어머, 그거 어디서 샀어? 나도 그런 자켓 하나 사고 싶은데 알려줘!' 등의 말도 들었다. 평소에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에게서 메신저가 오기도 했다.

 - 오, 오늘 옷 예쁘네요. 핑크가 잘 어울리네.

 - 오? 선임님이 인정해주시니까 기분이 좋구만요?

 - ㅇㅇ 요즘 확실히 신경을 좀 쓰고 다니네. 그렇게 돈을 써봐야 돼. 나는 구두에 눈이 돌아간 적이 있었어요. 한 켤레에 70만 원짜리 구두를 다섯 켤레를 샀지.

 - 엑? 그러면 350만 원인데요? 다섯 켤레 다 잘 신으셨어요?

 - 그럴리가... 하나만 신고 나머지는 결국 다 버렸지ㅋㅋㅋㅋㅋㅋ

 셋째, 아예 예상치 못한 재미도 있었다. 여러 가지로 공부한 걸 블로그에도 올렸는데, 몇몇 사람들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됐다며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으로는 올렸지만 글로 설명하지 않은 아이템에 대해서 물어오기도 했다. 패션 리더가 되겠다고 한 건 허세였지만, 그래도 한 명에게라도 도움을 줬다니 흐뭇해서 이후로도 새로 산 것들에 대해서 꾸준히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이건 정말 생각지 못한 건데, 엄마도 내가 입은 옷들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평생 내 의지로 산 옷이 한 번도 엄마 마음에 들었다고 한 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당연히 엄마 마음에 안 들 줄 알았다, 엄마한테 '엄마! 이제 나 내가 옷 다 사서 입을 거다~ 나를 말릴 수 없다~ 엄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뭐라해도 이제 귓등으로도 안 들을 거다~'라고 이야기 하긴 했어도 엄마 마음에도 들면 좋은 거다. 엄마가 이제 돈도 좀 쓸 줄 알고 제대로 입는 거 같다고, 독립 성공했다고 말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참, 내 삶에서 중요한 주변인인 남자친구는 색깔도 화려하고 패턴도 화려한 옷을 예뻐라 하는데, 내가 일련의 연구 끝에 입는 옷이 남자친구가 예쁘다 할 옷은 아니다. 내가 큰 맘 먹고 산 하늘색 니트에 대해서는,

 "21세기 할머니 같아ㅋㅋㅋㅋㅋㅋ"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근데 기분 나쁜 게, 거울을 보면 묘하게 뭔지 알 것도 같긴 하다). 남자친구는 한쪽은 초록에 끈은 노랑이고, 다른 쪽은 파랑에 끈이 주황인, 짝짝이 조던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그런데 그걸 선물해준 사람은 나다. 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길래 결제를 했다. 같이 나이키 매장을 가면 이제는 내가 먼저 가장 특이한 신발을 골라서 '이거 어때? 이거 신어봐' 한다. 그럼 또 내가 보기에는 뭔지 모르겠지만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지, '그건 아닌 거 같아'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또 약간의 승부욕이 발동되어서 '그럼 이거는? 그럼 저거는?' 한다. 나도 그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도 나의 취향을 존중한다. 한 번은 내가 산 옷에 대해 '그건 진짜 별론데?'라고 말하길래, '아, 뭐야! '진,짜!' 별로야? 그럼 반품할래!'라고 했더니, 남자친구는 '아, 왜! 내가 사주는 것도 아닌데 내 맘에 안 드는 거랑 상관 없잖아!'라고 했다. 맞다. 나에 대한 남자친구의 관심사는 옷이 아니고, 나도 남자친구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려고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반대도 똑같이 성립한다. 굳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남자친구가 내 독립의 도우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독립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나의 독립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사실 예산을 한 달치 저축 포기로 삼았는데, 세 달치 저축이 포기되었다. 허허. 괜찮다. 대출을 갚는 게 저축을 하는 거니까... 비싼 값을 치뤘지만 3개월 속성으로 패션 독립에 성공한 것 같다. 기쁘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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