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고 있는 게 전부인가?
돈이라는 게 뭘까. 답도 없는 이 질문을 나는 늘 떠올리곤 했다. 돈은 때로는 행동의 이유가 되고, 추진의 수단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종종 성과이기도 했다. 월급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달도 어김없이 회사를 꾸역꾸역 다녔다는, 인내에 대한 보상이었다. 일을 잘해서 받는 돈이라고 하기엔 일을 못할 때에도 돈을 받았으니까. 이렇게 세상이 차가운 때에 다니기만 하면 돈 주는 회사가 얼마나 좋냐는 몇몇 이들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던 나도 어느샌가 그게 좋은 줄 알게 됐다. 일을 잘하고 싶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에는 일을 잘 못해도 월급은 나온다는 것에 다행스러운 마음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돈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질서 또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돈에 대한 의문으로 나타났던 것에 가깝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 세계를 표류했다. 생각 없이 목적 없이 그렇게 이게 답인가? 아님 이거? 하면서. 시간은 회사생활을 핑계로 속절없이 흘러갔다. 좋은 구실이었다. 입사를 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엔 딱 천 원만 내 힘으로 벌어보면 그때부터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왜 회사를 통해서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 의문은 다른 생각을 끌어왔다. 생각이 많은 나는 '애초에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까지 다녀왔다.
천 원.
천 원을 어떻게 벌지? 생산이 전제된 천 원이었다.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서 매출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이모티콘을 그리거나 전자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모티콘은 얼추 그려보면 되겠지, 뭐. 대한민국 학생들의 대부분은 어릴 적 미술학원을 다녀보지 않는가? 전자책... 내 머릿속의 지식을 헤집어보면 쓸 만한 뭔가 나오지 않을까? ...음, 그동안 공부를 헛했다. 인생을 헛살았다. 뭘 생산해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뭘 배워볼까? 이거다! 하고 확 꽂히는 게 없었다. 내가 돈을 바라는 건지 회사일이 아닌 독립적인 나만의 일을 바라는 건지 헷갈렸다. 나는 멍청하게 여기에서도 선비처럼 운명 같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이모티콘 그리는 법, 인스타그램 키우는 법, 전자책 쓰는 법 등을 수강했다. 유튜브, 스마트 스토어에 관한 책도 사봤다. 정해진 길만 따라오던 나에게는 혼란스러운 세계였다. 재무상황을 따져보면 마이너스였다. 강의를 듣느라 수십만 원을 지출했지만 생산해내거나 벌어들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해보긴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브런치 작가로 글 쓰는 법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초등학생 때는 담임 선생님과 엄마의 무한한 칭찬으로 작가의 꿈을 꾼 적도 있었다(물론 그 작가가 이 작가는 아니지만 무슨 상관).
작가 승인에 서너 번 떨어졌지만 그래도 다시 도전했다. 내 하루하루가 내 마음에도 안 드는데 남 마음에 안 드는 것쯤이야. 승인이 된 것은 내가 만 25세에 월세를 받는 집을 샀다며, 그 글을 써 내려가겠다는 다짐을 제출했을 때였다. 집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다 긁어모아 글을 썼다. 2030 세대의 부동산 열풍에 힘입어 내가 쓰는 글이 종종 다음 메인에 걸렸고, 머니 탭 또는 홈 탭의 조회수 상위 7 이내에 드는 일도 많았다. 얼추 에세이 하나 정도는 분량이 되겠다 싶을 때 몇몇 출판사에 내 브런치북을 소개하며 책을 내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거절당하거나 답을 받지 못했다.
전월세 자취방을 구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꿀팁을 정리해서 전자책을 만들었다. 크몽, 탈잉 등에 올렸다. 매출 한 건이 발생했을 때는, 그냥 신기했다. 이런 방식도 있는 거였구나. 다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매출은 한 건이었다. 내가 생산한 것은 사람들이 돈으로 결제할 만큼 절실한 정보라거나 양질의 콘텐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보통은 돈을 버는 법에 대한 게 많이 팔리니까.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식을 알려주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지 10개월 정도 된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MZ세대의 내 집 마련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부글부글 끓어대던 속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제세공과금을 뺀 계약금이 들어왔다.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멋진 성과가 있단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 누군가가 그걸 알아봐 주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뻤다. 출판을 하게 되면 계약금으로 일부를 받고 판매부수에 따라 비율로 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된다. 과연 판매부수에 따른 배분이 계약금을 넘을 수 있을까 싶긴 했지만, 뭐. 이렇게 시작하는 거지.
내 기준 눈부신 이 성과는 그 이전과 이후의 내 모습을 바꾸는 데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출판 한 번 했다고 인생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 말라는 글도 봤지만, 내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인생보다는 태도가 바뀌었다. 내 힘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 무언가 성과를 냈다는 뿌듯함, 그런 것들이 나를 다시 달리게 했다. 이전에는 운동장에 쭈그려 앉아 나무 막대로 흙바닥을 주구장창 파는 느낌이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따금씩 여행 기록이나 올리던 블로그도 다시 꾸리기 시작했고, 전자책은 크몽, 탈잉 등에서 내리고 블로그에 무료로 배포했다. 매출 한 건에 대해서는 메시지를 보내 구매해준 감사한 분께 돈을 다시 돌려드렸다. 어차피 단편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생산의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블로그를 통해 네이버 OGQ 마켓에 이모티콘(네이버에서는 스티커라고 한다)을 그려 내기도 했다. 배워뒀던 것을 나름 써먹게 된 것이다. 그간 배워도 쓸모를 못 살려서 아쉬웠는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건지 내가 간사한 건지, 그래도 배우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랜선으로 만난 스승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출간 제안을 받고 출판까지 달려온 5개월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여전히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하루를 구성하는 조각이 훨씬 단단해지고 결속력이 생겼다. 애초에 돈을 벌고 싶은 건지 나만의 일을 하고 싶은 건지 헷갈리던 마음도 정리가 됐다. 나만의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걸로.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만의 일을 잘 구축해나가는 걸로. 천 원 보다는 많은 돈(?)에 움직였지만,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일주일에 세 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한 번은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추진해나가고,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실상 축내고 있던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히 쓸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달성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 당분간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뜀박질을 계속할 것 같다. 그 자체로 즐거운 바보처럼. 드디어 내 맘대로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