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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이 뭘까? 내가 마주한 문제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구할 수 있다면 그 상태를 독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확실히 독립에 도움이 된다. 글을 쓰면 형체가 없는 내 생각을 밖으로 꺼내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언젠가 봤던 온라인 강연에서 어느 학자가 말하길, 책을 무작정 읽기만 하는 것은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식민지가 되도록 두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분이 말씀하신 의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글을 올바르게 읽어야 한다는 건지, 글을 쓰는 것을 해보라는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그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있어 독립을 해나가는 과정이자 결과였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 이따금씩 글을 썼다. 꼭 남이 보는 곳이 아니더라도, 메모 앱에라도 글을 썼다. 내 생각은 애초에 길을 잃은 상태였다. 생각이라는 건 참 고요하고도 요란한 것이라 하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가 툭 튀어나왔고, 그 하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또 하나가 새롭게 등장했다. 또는 버퍼링이 걸린 것 마냥 한 가지 생각이 몇 시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에게 책임과 질서가 있는 생각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게 싫었다. 알고 보니 내가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이 잔뜩 얽히고설킨 채로 있는 것보다 하나하나 풀어내 보는 것이 나의 뜨거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내 글은 대화를 한다.
- 아오 힘들어(원래 농담으로 지나치려 했던 듯).
- 왜 힘든데?
- (갑자기 진지해짐) 그냥 다... 회사 다니는 것도 그렇고, 사는 게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달라.
-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 오늘 널 가장 괴롭혔던 건 뭐야? 그건 바꿀 수 있는 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글을 써보면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그 끝을 잡아당기면 실이 길게 늘어지듯 내 생각의 정체를 뚜렷하게 잡아당길 수 있었다. 고민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담자의 말을 들어주고, 끄덕끄덕 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글쓰기는 내가 나에게 끄덕끄덕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내 고민을 글로 쓰면 내 생각을 한 발 떨어져서 살필 수 있기 때문에 해결방안을 찾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의 일은 대부분 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내가 끌어안은 고민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도 많다는 것을 글로 쓰고서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많은 고민 중 대부분은 글을 씀으로써 해소가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상태와 생각을 표현한다. 언어를 활용한 표현에는 말이나 글이 수반된다. 그런데 말은 흘러간다. 웬만큼 머릿속에 정리된 것을 끄집어내지 않는 이상 휘발된다. 반면 글은 어디엔가 남는다. 종이로 된 일기장이든, 나만 볼 수 있는 메모 앱이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플랫폼이든 글을 쓰면 어떤 곳에 흔적이 남는다. 흔적이 남으면 그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글이 전제되지 않은 말, 그러니까 생각을 거쳐 바로 나오는 말들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반면 글은 흔적이 남아서 '내가 여기까지 썼구나, 다음에는 저것도 써야지'라는 회고가 가능하다. 내가 쓴 글을 돌이켜보고 다시 앞을 보면 더 많이, 더 멀리 나아갈 계획을 세울 수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무질서와 내 생각을 분리하고 형체가 없던 것을 실체화하여 내 자신을 바로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