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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an 19. 2022

낼 곳 없는 사진 찍어보기

독립을 자축하며

 내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은 언제나  또는 말이었다외모는 포함된 적이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생각에 대한 검열을 자주 했다.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미덕, 예를 들면 돈을 밝히면 안 돼,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의 외모는 엄마가 신경 쓰거나, 소풍을 같이 가는 친구들이 신경을 써줬다. 주로 그들은 나를 답답해하고, 나는 쭈뼛대는 입장이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서 좋은 거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애를 써줬는데, 엄마가 너무 애를 써줘서 그런가? 나는 내 생각이 너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모에 대해 아예 쿨했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니어서 늘 애매했다. 결과적인 모습이든 기분이든. 그랬던 내가 다이어트를 하거나 옷을 열심히 사보는 등 나 자신의 외모에 제대로 신경을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살을 조금 뺐다고 해서 예뻐진 것도 아니고, 옷을 어느 정도 깔끔하게 입게 되었다고 해서 뽐낼 정도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독립의 의미로 나는 나를 위한나만이 피사체인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그간 사진가에게 나를 맡기고 찍은 사진은 졸업 사진, 취업용 사진이 다였다. 가끔 가다 우정 사진을 찍곤 했지만 그것 역시 우정이라는 적당한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어딘가에 프로필로 쓰기 위해 찍는 줄로만 알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위한 기록용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들이 보였다. 당연히 어떤 브랜드의 놀라운 마케팅일 수도 있고, SNS라는 채널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를 위해 나의 기록을 남긴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근데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부가 10년 전 사진 속 장소에서, 사진 속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든지, 스윗한 아빠가 매년 아이 사진을 찍은 걸 모았다든지 하는 걸 보고 감동했던 걸 떠올리면 결국은 사진이 남는 것이 사실이니까. 상술에 속은 것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독립을 자축하며 프로필 사진을 잘 찍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예약을 걸었다. 너무 인기가 많은 곳이라 가장 가깝게 찍을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뒤였다. 캘린더에 저장을 해두고 마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아까 말했던 나의 생각과 자기 검열 때문에 나는 외모에 큰돈을 들인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꾸민다고 해서 되는 외모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려놓은 것도 있었다). 대학 시절 때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피부과를 많이 다녀서 놀랐고, 회사에 들어오니 언니들이 필러나 보톡스 얘기를 자연스럽게 해서 놀랐다. 그런 내가 사진 촬영을 기다리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는데,

 '기왕 사진 찍으러 가는 거, 메이크업까지 받고 갈까?'

 였다. 그래서 촬영을 3일 앞두고 부랴부랴 메이크업 샵을 찾아봤다. 사진 촬영 비용이 6만 원인데 메이크업이 9만 원이라 흠칫했지만, 화끈하게 저질러버렸다. 돈을 많이 쓰게 되니 사진이 잘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생겨서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지, 어떤 헤어 스타일을 해보고 싶은지, 어떤 색감이 어울릴지, 어떤 옷을 입을지를 열심히 찾아봤다. 민망해하면서 아름다운 배우나 아이돌의 사진도 저장했다. 이렇게 유난을 떨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재밌었다.


 드디어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이 되었다. 전날에는 잠이 안 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들뜨고 애가 닳는지. 독립을 기념하여 이전과 다르게 준비했으니 꼭 마음에 들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디 TV에라도 나가면 나는 3일 동안 잠을 못 잘 건가 보다. 새벽같이 일어나 부기를 빼는 스트레칭도 하고, 얼굴 마사지도 하고 메이크업 샵에 갔다. 평소에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는 게 다여서 그런지 화장품을 여러 개 바르니 비염이 도졌다. 그래도 좋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이 내 의견을 많이 물어봐주셨고, 나도 될 대로 되라고 맡기는 게 아니라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수정해달라고 용기 내서 이야기를 했다. 이게 무슨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싶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발언에 용기가 필요한 편이다. 아무튼 그래서 다행히 첫 단계로 마음에 드는 메이크업이 완성되었다. 이제 사진을 이쁘게 찍으면 되었다.

 스튜디오에 가서 기록가라고 불리는 사진작가를 만났다. 예전 같으면 알아서 잘 찍어달라고 했을 것을, 이번에는 옷을 여러 개 펼쳐놓고 뭐가 괜찮을지 먼저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느낌을 열심히 어필했다. 집착에 가까운 사전 작업 덕분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진가님도 이견을 보이지 않고,

 "좋은데요? 잘 찾아오셨네요! 이렇게 가보죠!"

 라고 하며 나를 그의 카메라 앞에 세워주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재밌었겠지만,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 같다고 했다. 물론 눈빛이 평소의 내 눈빛보다 촉촉해진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보정되지 않은 통통한 옆 광대, 네모난 턱, 짝짝이 눈이 나였다. 그 누군가가 남자친구이긴 해도 뭐, 난 좋기만 했다.


 사진의 의미가 특별해서인지, 준비하면서 애정을 많이 담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돈을 많이 써서인지, 사진 속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이 사진을 물끄러미 보게 되었다. 좀 더 나다움을 찾은 내가 기특하고 심지어는 애틋하기까지 하달까(자의식 과잉인가?). 어떤 소회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진 촬영은 나의 독립에 아주 적절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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