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나저러나 열받는 성격 파탄자
스스로를 모순 덩어리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실 꽤 많다. 신경을 끄고 싶은데 신경이 쓰인다거나, 제발 좀 구태의연했으면 좋겠는데 화르륵 분노하고 애먼 곳에 화를 냈다가 후회한다거나 할 때 등등 내가 나에게 모순됨을 느낄 때 스스로에게 '아, 어쩌라고!' 하는 마음에 짜증이 난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열받는 나에게 열받을 때, 그때가 진심으로 화가 나는 때다. 요즘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한때는 모종의 사건으로 열을 받고, 열받는 나 자신에게 열받느라 하루 종일 성나 있을 때가 있었다.
열받는 나에게 왜 열이 받는가 하면, 첫째, 지금의 내 모습, 나에게 닥친 상황은 어쨌거나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오늘이 있기까지 내가 했던 무수한 선택을 거슬러, '이 정도면 우리 엄마, 아빠가 날 낳은 게 문제군' 할 때까지 가기도 한다. 가끔은 과거의 내가 '이 정도면 괜찮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가벼이 넘겼던 것들이 후폭풍이 되어 돌아오는 걸 목격하게 된다. 이것 참, 과거의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이기도 하니까 지금 내 머리를 툭툭 때려본다. 차마 아프게 때릴 수는 없는, 어리석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스스로를 생각하며 한숨이나 폭 쉰다.
열받는 스스로에게 열받는 두 번째 이유는 나에게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현실적이고 싶은데 여전히 이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 편하고 싶은데 편하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남들이 내 마음과 같을 수 없는데 같았으면 좋겠다. 나는 냉정하게 내 길을 가고 싶은데 뒤에서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대차게 흔들며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 같달까. 무시하고 싶은데 무시할 수가 없는 마음들이 나를 고뇌하게 만든다.
셋째, 그 마음들을 끌어안고 낑낑대는 미련한 나의 모습이 이다음에도 이어질 걸 알기 때문이다. 이쯤 해서는 사실상 해탈이다.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인데, 언제쯤 조금 더 쿨해질까, 언제쯤 조금 더 세련되어질까, 이번 생은 글렀나. 사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싶어 이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상 앞에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짜증을 내서 무엇하리. 심호흡 세 번 ㄱㄱㄱ'
어이없어서 웃으라고, 심호흡 겸 콧김을 뿜는 자화상도 하나 그려둔다. 짜증을 내질 말든가, 짜증이 나면 해결을 하려고 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하라고 일러둔다. 열받는 나에게 열받듯이, 열 내리려고 하는 내 덕에 열이 내려간다. 내 세상에서는 나만큼 변덕스러운 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