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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Nov 14. 2022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규칙적인 생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내가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머리를 써야 할 거리가 생긴다는 점도 좋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중 하나다.


좋은 인생이란, 좋은 삶의 태도란 무엇인지에 대해 종종 고민하는 나에게 회사는 여러 표본을 보여준다. 특히 어느 정도의 세월을 거쳐 50대에 이른 선배님들을 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저분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도록 잘 커야지.’

모두가 좋은 사람, 되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일 수는 없으니, ‘저분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게 하는 분들도 가끔은 계시지만, 뭐. 그조차도 나쁘지는 않다. 내가 잘 받아들이면 되니.


어떤 분들이 좋은 평판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높은 자리만이 그분의 의미가 되지는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경이 모여 다수의 신뢰를 얻은 분들은 분명 ‘좋은 사람’이다. 특히 후배에게 존경받는 분들이다. 선배의 인정을 받는 것과 후배에게 존경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후배에게 존경받는 걸 택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선배의 인정은 높은 자리를 비롯한 실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효용이 될 수 있지만, 내가 선배님들께 존경한다고 말씀드리는 게 어떤 실체적인 것을 드릴 수는 없으니. 그 어떤 쪽도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존경’ 쪽을 선택하는 분들이 또 한 번 존경스러운 지점이 여기에서 나온다. 다른 쪽이 실질적인 효용이 있으면서 옳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을 선택하시는 거니까.


회사에는 사실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어느 한 분을 꼽기가 힘들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을 대강 유형화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와, 심지어 본인보다 한참 어린 나와 대화를 할 때에도 언제든지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본인의 의견은 무조건 옳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조건 틀리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신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옳을 수 있고,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틀릴 수 있다. 내가 남을 틀렸다고 이야기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지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대화의 향방이 확연히 갈린다. 이따금씩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젊은 사람의 이야기를 어른된 도리로 그냥 들어주시는 느낌이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반면, ‘엇, 이 분은 내 이야기가 맞다면 설득당할 마음이 있으시구나’ 하는 분들이 계신다.

한 번은 하루 종일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설명회를 온라인으로 한 날이 있었다. 시간대를 공지하고 되는대로 들어와서 들으시는 일정이었다. 기존에 공지했던 일정이 끝나 정리를 하려던 차에, 한 지사장님께서 화상회의에 접속하셨다.

“혹시 늦었나? 내가 잘 몰라서 좀 더 들어보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 회사생활 중에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였다. 나는 이제 입사한 지 3년 된 조무래기이고 지사장님은 리더 역할만 13년째 한 분이신데, 내 설명을 잘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프로젝트의 내용을 궁금해하시고 질문해주셔서 감사했다. 그 전에는 새로운 업무방식을 적용하고 싶지 않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감동받아서 팀으로 돌아가 팀장님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며 조잘거렸더니,

“원래 좋은 분이셔~”

하고 알 만하다는 듯 웃으신다. 알고 보니 한때 지사장님이 우리 팀장님의 팀장님이셨다고 한다. 내가 좋은 팀장님을 만난 건 그 전의 좋은 팀장님이 계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못한다고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분들.


선배가 돼서, 어른이 돼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다. 하다 못해 동생과 몇 살 차이 안 나는 형을 두고도 사람들은 ‘형이 돼서 쯧쯧’ 하질 않는가. 그 마음을 알아서,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을 보면 되려 존경스럽다. 아직 젊은 나조차도 틀렸다는 지적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고, 그게 아니라고 주장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힘들다. 그런데 한참 어른 되는 분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여유 있어 보이고, 그것만으로 스스로가 부정될 수 없을 만큼 좋은 면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불과 몇 개월 전 나는 팀장님이 납득되지 않는 지시를 내리시면 팀장님한테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던 아주 대단한 젊은이였다(비꼬는 거 맞다).

“팀장님, 지금 1도 안 끝났는데 10을 할 방법을 찾아오라 하시면 어떡해요...”

라는 맹랑한 반항에 팀장님은,

“미안해... 근데 다른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잖아. 좀 알아와 봐.”

하실 뿐이었다. 미안하다고 하시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까지 친절하게 다시 이야기해주시니 ‘에잇. 내가 뭐라고. 내가 나빴다‘ 생각하며 시키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이 좋은 분이셔서 내가 그런 반항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죄송했다.

솔직히 팀장님이 미안해하실 일도 아니긴 했지만, 다른 팀장님이었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일이다. 한참 후배인 팀원에게 굳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찬찬히 설명을 해주는 인내심을 발휘하는 팀장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화가 많아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분들.


지금 당장의 어려운 일보다 나중의 큰일을 생각하는 것, 사람을 챙겨 가는 것, 건강을 생각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것. 조직과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명분 하에 희생되곤 했던 것들을 챙기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요즘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 마냥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고 실제로도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의 어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다. 선배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잘 지키려 했던 마음은 성공하고자 애쓰는 요즘의 젊은 사람들과 다름없거나 더 간절하다. 분위기가 바뀌고 해결책이 바뀐 것은 인정하지만, 중요한 게 뭔지 알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려는 근본적인 마음은 같다.

나는 늘 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 내릴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런 어른들을 보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아는 게 인생을 잘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걸 잘 알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애써온 어른들을 존경할 수밖에.


사건보다 사람에 더 집중하는 나는, 회사의 어른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실마리를 얻고 있다.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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