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
자기 계발을 시작하기 전에 추천하고 싶은 마음가짐이 있다. 무조건적 수용을 해보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고쳐야 할까 고민하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를 알아내고 싶어서 내 생각을 되짚어 보고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가 내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막아대는 궁극의 방패를 장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세상이 다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우물 안 개구리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짐작만 하는 것과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내가 사는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꽤나 가까이 있었지만, 동시에 멀리 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의 생존에 대해서는 얼추 아는 것이 생기고, 앞으로의 내 모습도 짐작이 가능한 상태에서, 어쭙잖은 논리력과 추리력으로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일들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남의 성공을 보면 내가 가진 것들에 비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 커 보였고, 될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가 먼저 보였고, 성공에 대한 확신보다는 실패할 일말의 가능성이 더 와닿았다. 그러면서 나도 행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작은 습관과 성실보다는 내가 닮을 수 없는 거대한 성취를 가지지 못한 것에 조바심이 느껴졌다. 앞으로 이뤄가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배우고 겪은 것만으로 그 많은 것을 이뤄 나가려고 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일수록 마음은 모나졌고, 세상을 삐뚤게 보는 마음도 커져갔다.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하고서는 극단적으로 반대의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읽는 책의 저자가 하는 말, 내가 듣는 강연의 강연자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무슨 말이든 반박할 수 있어요' 말고, '무슨 말이든 수용할 수 있어요' 대회에 나간 사람처럼 굴어보기로 했다. 나는 나의 삶의 방식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을 알아야 하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구경해야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보고 듣는 말은 일단 다 옳다,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때부터는 아주 조금씩,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 역시 꿈꿀 수 있는, 원한다면 골라잡을 수 있는 양질의 보기가 되었다. 당연히 내가 접한 것들이 모두 납득이 가는 메시지를 준 건 아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책이나 영상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오히려 내가 스스로에게 갖고 있는 엄격함을 내려놓게 해주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생겼고, 모든 게 좋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성취를 이뤄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대로 하루하루를 잘 채워나간다면 내가 원하던 나의 멋진 모습이 현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막연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현실을 바꾸지는 않는 게으른 욕심쟁이의 모습을 버리고, 당장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로 했다. 드디어 불안보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더 커져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똑똑해서 신중하다. 혹시 모를 위험까지 생각하느라 더 큰 가능성을 튕겨낸다. 가능성을 튕겨내면서 긍정적인 감정들까지도 함께 내쫓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수용해보자. 별 일 안 생긴다. 좋은 일은 생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