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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20. 2023

부장님은 왜 자식을 나처럼 키우고 싶다고 하실까

쉽지 않아요

회사 부장님들께서 자식을 나처럼 키우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어? 쉽지 않아요 부장님^^”


나처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유순한(?) 아이로 키우기는 쉽지 않다. 큰 의미도 없다. 자녀의 독립을 위해서는 오히려 본인의 주관이 뚜렷한 것이 도움이 될지도.


내가 엄마를 더 마음고생하게 한 건 성인이 되어서였다. 어렸을 때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다. 우리 부모님에게 그 나름의 고충이 왜 없었겠느냐마는, 자녀라는 존재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불안과 걱정 외에 이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어서 성격이 왜 이럴까, 나중에 뭐가 되려고 이럴까 그런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그 착함이 나의 시야를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에 휩싸였을 때 반항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엄마 말을 안 듣고 싶었다. 반항을 위한 반항을 했다. 딱히 이렇다 할 근거도 내용도 없지만 형식이라도 갖춰야 할 것 같았달까.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왜 뒤늦게 터무니없는 반항을 하냐며 황당해했다. 오래가진 않았다. 의미 없이 투쟁을 하는 건 나라는 사람에게는 에러 코드 같은 것이었다. 수정해야 했다.


그 시기가 지나고는 과정과 결론을 구분해서 엄마와 같은 결론을 내리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예전에는 무지성으로 엄마 말을 들었다면 이제는 유지성(?)으로 참고를 하는 정도. 물론 엄마 말이 틀린 게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엄마의 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만, 엄마에게도 ‘이건 내 선택이야’ 하고 말했다. 엄마가 그 말을 새겨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혜로운 어른의 관용으로

“그래, 너의 선택이야.”

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우쭈쭈 받는 느낌이 들어 묘했달까.


또 한 번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서 자란 것이 그리 억울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차상의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결론이더라도 내가 머리를 굴려서 마음을 써서 결정했다면 후유증도, 불안도, 원망도 덜했을 테니까.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고 공부하라고 혼내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들도 많다고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이러나저러나 부모라는 역할은 피곤하고 고된 일이다.


물론 자녀를 나처럼 키우고 싶다 하는 부장님의 말씀에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부장님이 아실 리가 없으니까. 넉살 좋은 모습을 보고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굶진 살겠지 싶은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부장님의 딸, 아들이 즐겁게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사교적이고 똑똑하게 착하게 챙길 거 잘 챙기면서 잘 자라길 바라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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