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잡생각왕
이따금씩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거리 위의 무법자들이 다른 운전자 또는 똑같은 무법자들에게 방해가 될 때가 있다. 갈등을 목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부터 실험의 표본을 수집하듯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본다. 기사님의 표정을 꼭 확인한다. 기사님은 꼭 저 방해되는 것의 얼굴을 보겠다는 듯 두상의 각도를 옆 아래로 기울이고 비튼다. 마치 침대 아래에 굴러들어간 것을 찾을 때의 각도 그거다.
본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작 시선을 받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할까?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욕이라도 흠씬 해주려고 하시는 건가?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다음 본인의 편견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하시는 건가?
어쩌면 얼굴을 알아야 제대로 된 저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을 저주하는 것과 얼굴을 아는 사람을 저주하는 것 중에 저주가 더 잘 먹힐 것 같은 쪽을 고르라고 하면 단연 얼굴을 아는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에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얼굴을 아는 사람을 꼽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서는 제법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입꼬리의 각도, 미간의 주름, 눈의 크기 등으로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고로 나에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얼굴을 모르면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추측조차 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는 상대방은 나의 얼굴을 아는데,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모르는 상황에서 악플을 받는 유명인의 삶이 제법 피곤할 것 같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본인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겠고. 콜센터 직원들도 마찬가지. 면전에 대고는 못할 말을 수화기 너머로는 떳떳하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 감정 노동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얼굴을 알고, 심지어는 거의 매일 같이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차피 내 얼굴을 잊고 말 사람들 말고 나 역시 누가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 나는 사람들 말고, 자주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을 더 챙기고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떠올리면서 좋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앨범에 담긴 얼굴들을 좋은 사람들의 것으로 채우고 싶고.
그 노래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쟁반 노래방을 보다가 배운 노래인데, '얼굴'이라는 곡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얼굴을 안다는 건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