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쓰는 말이었나?
자존감은 너덜너덜해지고 자존심만 남은 때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잘하는 건 하나도 없이 느껴졌고 그나마 잘하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어요. 그때 오랜 시간 제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해준 말이 있었습니다.
“성실이 얼마나 큰 재능인데. 누구나 뭐든 할 수 있는데 성실하지 않아서 못하는 거야.”
사실 그전에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지 않냐고 해준 말도 있는데, 그건 영 제 마음에 와닿지 않았거든요. 근데 성실이 재능이라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기분이 움직였습니다.
‘아...? 그러네? 되게 좋은 거 잘하네 나?’
누구도 성실을 재능으로 생각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으레 그래야 하는 것, 당연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성실이 재능이라는 말은 참 낯설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내가 살아온 삶의 기본적인 방식, 내가 가진 진득함도 낯설게 보이더라고요. 남자친구의 말을 들은 그 순간이 진하게 남아버렸습니다. 진짜 잘하는 걸 찾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게 없는 것 같아서 좌절하고 있었지만 위로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말이 저를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저 성실하기만 한 것으로는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기만’ 한 것으로 부족한 것이지 성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기 전 근거 없던 자신감에 근거가 생겼습니다. 무엇을 하든 ‘그래, 난 성실하니까! 이것도 끝까지 잘 해내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성실한 내가 잘 못하게 된다면 그건 안 맞아서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도 했죠. 조금 과한가요? 아무튼.
긴 시간 곁을 지켜준 사람이 해주는 말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줬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성실하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성실한지 어떤지를 모르는 사람은 훨씬 더 많겠죠. 하지만 오래도록 내 옆에 머무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해줬을 때는 ’이렇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 나에게 뭔가 있긴 하구나‘ 생각하게 돼요.
흔히 좋아하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인 순간을 ‘알아보다’라고 묘사하는 거지만, 이런 때에도 쓸 수 있나 싶네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곁에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길, 그리고 무엇보다 나 역시도 상대방을 알아봐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