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살고 싶다면
집값이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래도 서울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 빠질 것 같긴 한데, 내가 사고 싶은 아파트는 안 빠질 거다, 2023년 하락장이 온다, 아니다 25년에 온다 등 아무도 알 수 없는, 가설만 가지고 있는 상태의 말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 같습니다. 저마다의 근거가 있으니까요. 집값의 향방에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진 집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는 내 몸 뉘일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상승이나 하락을 모두 고려했을 때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집을 사면 집을 사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매수할 수 있으면 매수하고 들어가 살 수 있으면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사분면은 제가 집을 사기 전에 향후 집값의 추이와 내 집 소유 여부 상황을 나누고, 각각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정리해본 것입니다.
1 사분면: 집값이 오른다, 내 집을 갖고 있다
내 집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오르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만 그것도 매도를 해서 이익을 실현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실거주를 위해 산 곳이라면 팔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 다른 곳도 오른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새로운 주택을 취득할 때 내는 세금과 이사에 드는 비용도 꽤 들고요.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사를 가는 것이 그만한 효용을 가져다주려면 기존의 집값이 꽤 크게 올라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2억 미만의, 가격 변동이 크게 없는 집을 산 것이므로 올라도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고, 떨어져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집을 샀습니다.
2 사분면: 집값이 오른다, 내 집 없이 남 집에 산다
'패닉 바잉'은 2 사분면과 같은 상황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집을 매수하는 것입니다. 내 집 없이 남 집에 살고 있는데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르면 영영 집을 못 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보면 '패닉 바잉'과 '영끌'은 단짝 친구처럼 같이 등장합니다. 패닉 상태가 되어 영끌하여 (아파트를) 바잉하는 것이지요. 남의 집에 사는 경우 월세나 전세자금대출 이자가 집주인이나 은행에게 지속적으로 나가지, 모이는 돈은 없지, 그러다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원룸과 달리 아파트는 가격 변동이 크니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잦고, 그러면 원치 않아도 이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3 사분면: 집값이 떨어진다, 내 집 없이 남 집에 산다
하락장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꽤 있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집이 없는 상태에서는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집값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떨어질지, 몇 년 후가 될지, 내가 회사까지 다닐 만한 거리에 있는 집의 가격도 떨어지는 건지 등 변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을 산다면 처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싸고 변동성이 작은 집을 사면 이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집을 시도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사분면: 집값이 떨어진다, 내 집을 갖고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집을 사면 그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는 꼭 세워야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경우 집값이 떨어지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없으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조치도 딱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집을 사면 가슴이 아플지언정 재무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며, 적어도 내 집이 있긴 하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집을 사야겠다고 최종적으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제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집이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보다 집이 없는 상태에서 집값이 올라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집이 있는 상태'에서 칭하는 집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말이죠. 이런 생각은 사실 저렴한 가격의 집을 살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집값을 지불해야 하면 이 모든 것들에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지요. 저는 제가 가진 집의 가격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했기에 구매를 한 것이고요. 실제로 거주를 충분히 할 만한 집이기에 매수한 것이었습니다.
집을 사거나 후일을 도모할 때에 이렇게 시나리오별로 정리를 한 번 해보면 머릿속에 어렴풋이 생각이 들쑥날쑥할 때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