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Mar 26. 2021

혹시 그냥 남의 집에 살아야겠다 생각하시나요

집을 사고 싶은데 망설여질 때

 집을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계산도 복잡하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집을 사기엔 나의 부족한 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에잇, 뭐가 이렇게 어려워! 때려치워! 그냥 전세자금 대출받아서 이자 꼬박꼬박 내면 되지!' 싶을 수도 있고, '아니...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데 고작 이거라고?', '수도권에 2억 아래의 집이 어디있냐?!'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 제가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집을 산 것을 후하게 평가하는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주택담보대출을 갚아나가는 것이 저축보다 더 빨리 돈을 모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을 일으킨 돈이 소멸되지 않고 집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주택담보대출도 대출이고, 대출에는 이자도 있으니 그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저는 재정상태를 확인하면서 가끔,

 "뭐야, 왜 이렇게 많이 갚았지?"

 라는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분명 20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는데, 오히려 대출을 일으켜서 갚는 방식으로 하니 2300만 원을 갚은 것입니다. 소득을 보수적으로 책정한 덕도 있고, 지출을 줄인 덕도 있습니다. 대출을 일으키면 얼른 갚으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출을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신용카드를 쓰고 후불 인생을 살던 날을 청산하고 체크카드를 쓰기 시작했고, 생각 없이 왕왕 쓰는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것에만 돈을 썼습니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필요할 때에는 지출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생활비를 정해두고 거기에 맞게 쓰는 식으로 하니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한 달에 지출 15만 원을 줄이면 1년이면 거의 200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저는 씀씀이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지출 축소의 효과가 더욱 큽니다.


 둘째, 전세나 월세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매매가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전세가나 월세도 오르내립니다. 집주인이 전세가를 올려달라고 하면 올려줘야 합니다. 아니면 전세가가 더 낮은 곳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이사를 다니는 것도 큰돈이 듭니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집주인의 의지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사 비용이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다 하며 작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 나의 돈도 안전하게 지켜지고, 한 집에 아주 오랜 기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2년마다 한 번씩 큰돈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당장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 집이 있으면 이에 대한 불안감과 번거로움이 상당 부분 줄어듭니다.


 셋째, 이렇게 작은 집 하나라도 매수를 해보면 그것이 멋진 시작과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저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집을 두 채 마련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세상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경제활동이나 삶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다음 집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본인의 상황을 진단해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이 있다면 준비 기간은 너무 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고, 준비는 끝이 없습니다. 완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부족해서 아직 안 되겠다'는 겸손한 마음은 여기에서 만큼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저도 어머니의 조언을 받고 주택 매수를 했던 것이고 여전히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많이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길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넷째, 집을 한 채 갖고 있는 것이 갖고 있지 않은 것보다 선택지가 많습니다.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살든, 조금 살다가 다른 집으로 갈아타든, 팔아해 치우고 남의 집으로 가든, 내 집은 전세나 월세를 주고 남의 집에 살든, 모든 것이 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집이 없으면 남의 집에 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 외부의 환경과 조건이 아닌 나의 계획과 의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요즘은 소유보다는 경험의 시대라고 하지만, 저는 그 경험이 '소유를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내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줄 몰랐던 제게 넓은 바다와 하늘을 선물해줬던 전셋집, 다들 비싸다고 뜯어말렸지만 회사에서 가깝고 넓은 집의 의미를 일깨워준 월셋집, 처참한 몰골을 뜯어고쳐 월세를 줬던 집, 수도권에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을 경험하면서 갖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경험과 배움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맞는 좋은 집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집은 제가 가진 희망 중에 하나입니다.


 다섯째, 감당 가능한 선에서 구매를 하면 내 집을 하나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투기를 하면 불안합니다.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 늘 고민하고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갖고 있는 집의 가격이 오르내리면 누구나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끌을 해서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곧 떨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큰 문제가 생깁니다. 집값에 대해 상승론도 있고 하락론도 있지만 내 집 하나를 갖고 있는 것은 투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3억짜리 집을 갖고 있다면 3억짜리 예금을 갖고 있는 것보다 안정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려면 집은 꼭 있어야 하고, 남의 집에 사는 경우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정적으로 큰 지출이 발생하는데, 집이 있으면 그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돈을 부동산으로 묶어두면 현금에 비해 깨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산을 지키기에도 좋은 방법입니다. 한 채를 산 이후에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해나갈지, 또 다른 주택을 매수할지 등은 선택의 문제이지만 감당 가능한 한 채를 사두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판단을 해보고 내 집을 사야 한다는 결정이 서면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집도 찾아봐야 하고, 공부도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 되지만, 현재가 쉽지 않다고 해서 닥치지 않은 미래를 미리 희생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 브런치북은 내용을 상당 부분 보충하여 동일한 이름의 도서로 출간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전 20화 20대에 다주택자가 되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