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역동적인 노동과 스스로에게 책임 있는 재테크
학창 시절의 나는 왜
그 말들을 오롯이 받아들였을까
사회로 나와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흐름을 '나의 일'로 맞이하면서 저는 학창 시절 도덕책에서 나오거나 학교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던 미덕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는 게 성공한 삶이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젊을 때 고생해서 40대 50대쯤 되면 편안하게 사는 거야.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돈, 돈 하면 안 돼.
저는 착실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던,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는 저의 세상이었고, 교과서는 제 삶의 방식이었고, 선생님은 저보다 먼저 태어난 선배이자 인생의 멘토였습니다. 학교, 교과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연중에 저는 자본소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자 요행이고, 근로소득만이 열심히 산 사람에 대한 가치 있는 보상인 건가 보다, 착실하게 사는 나는 그 가치를 잘 지켜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건강하고 역동적인 노동
그런데 요즘은 그 '노동'이라는 것이 타인을 위한 노동,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성실하고 경건한 노동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한 노동, 건강하고 역동적인 노동이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떤 생산 수단을 갖고 있는 사람의 노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나의 가치를 올리고 내가 생산 수단을 갖도록 자가발전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시간을 써서 정해진 자리를 지키는 것도 노동이지만, 여기저기로 쏘다니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을 공부하고 보이지 않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돌아가게 할 수 없을지라도 내 자신을 남이 가동하는 세상에 휩쓸리게 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겠다, 내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과거의 내가 만들어놓은 땅을 디딜 수 있게 해 둬야겠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나 자신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은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지만
불행하게 할 수는 있다
돈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낭만주의자이면서 속세로부터 체통을 지키는 선비인 척, 돈과 다른 가치들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며 지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돈 역시 다른 가치들처럼 그것이 부재할 때 나를 불행하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할 줄 알고, 돈과 다른 가치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재테크라는 단어가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터부시 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재테크는 뭔가, 영화 타짜에서 '오함마 가져와야 쓰겄다'하고 누군가가 나를 의심하고 내 손을 내려치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잔기술인 거 같은 느낌이랄까요? '권모술수'라는 사자성어의 맥락에서 오는 딱 그 느낌이 들었거든요.
내 돈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재테크
지금도 재테크라는 단어를 잘 쓰진 않지만 그런 거부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돈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재테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무얼 해야 나를 지킬 수 있는가, 그 최소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제가 내린 답은 바로 내가 살 집을 사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내가 살 집을 마련하면 내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격이 떨어질 수 있지만,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주는 것이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내가 감당할만한 수준에서 집을 구매한다면 집값이 떨어져도 파산을 한다거나,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기분은 안 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다 주식과 코인에 몰려가는 시점에 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바꾸고 있는 세상의 이치와 질서의 규칙을 수용하는 것을 원망하거나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다만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하게 살면 괜찮습니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려고 하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위로하면서 살다가 문득 찾아드는 금전적 위기에 마음이 흔들려버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있는 게 없으면 내 자신에게 큰 상처와 실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미래의 내가 위태로울까봐 걱정된다면 뭐라도 해야 하고, 세상에 적응도 해야 하고 도전도 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재테크를 잘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돈과 노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고, 고백하자면 실질적으로 저는 돈을 불리는 재테크는 못했습니다. 아까 말했듯 주식이다 뭐다 다른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호황에 엄청난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는데, 저는 전혀 그러질 못했습니다. 집을 사느라 시드머니가 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핑계고, 주식은 공부를 제대로 안 했습니다. 코인은 겁쟁이라서 못했고요. 공부를 하지 않아 기회를 놓쳤습니다. 사람마다 적성과 흥미가 맞는 것이 있다는데 저는 부동산 쪽이 관심이 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식 공부도 간간이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감정이 없어요."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에서 너나위님이 하셨던 인상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감정이 없어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결국 이 한 문장에 모든 것이 함축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나 살아온 환경과 배경 등 사회에서 종종 연민과 멸시, 질투와 존경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이 정작 내가 직면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고, 더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나와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돕지 않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또는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매야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상황과 가진 무기들을 활용해 나름의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지식과 지혜를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략을 이리저리 바꿔보기도 할 거고요.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떤 때는 지겠지요. 거기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고 상흔도 내가 감내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뭔가 잘 안 맞아서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맞이하지 못한다 해도 미래의 저에게 최소한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습니다.
"나 그래도 공부하고 노력했으니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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