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6
2120년, 대형 서점이 남아있다면 전쟁사(戰爭史) 옆 서가(書架)에 전염병사 또는 질병사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역사 스테디셀러 표지 아래 ‘바이러스사 100 장면’, ‘한 눈에 보는 세계 전염병사’ 따위가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상아탑에 숨어있던 병리학, 미생물학과 같은 고루한 학문이 여염집 책꽂이에서 기지개를 켜겠지요. 어두운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30만 명을 훌쩍 넘어선 맹주 미국의 COVID-19 감염자 수를 위시한 소위 ‘선진국’들의 확산세는 아직 겉잡을 수 없습니다. COVID-19가 불러온 작금의 위기는 1929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주가 지수 폭락에서 시작된 대공황, 그로부터 파급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강대국들이(또는 파국의 주범들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꾸민 ‘세계화’란 거미줄의 한 귀퉁이에 난 구멍, 즉 2008년 금융 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따위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예언들을 한 마디로 갈음하면,
‘인간 세상은 2020년 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이미 슬프고 불안하며 무서운 예상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요. 문장의 결 또한 다를 거에요.
한 달 가까이 네 식구가 집에 모여 있어요. 이 사실을 해석하면 매번 다른 메뉴로 세 끼 밥을 차려내야 한다는 뜻이고, 매일 청소해야 한다는 뜻이죠. 바깥양반과 동선이 자꾸 겹친다는 의미고, 시시각각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 분의 눈빛을 재빠르게 읽은 뒤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지요.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다가 제가 싸움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고, 담임 선생님도 되었다가 체육 선생님, 친구이기도 했다가 결국 잔소리꾼이자 짜증부자 아빠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루 세 번, 네 사람이 둘러 앉아 밥을 먹다 보면요, 반찬 흘리지 말란 눈빛은 여전히 쏘지만서도 총각김치를 송곳니로 베어 무는 큰아이의 벌건 입가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요, 김치찌개 냄비에 마지막 남은 돼지고기를 바깥양반과 동시에 바라보다 결국 반으로 잘라 나눠 먹기도 해요. 청소기 들고 딸아이 방에 들어가면 어제까지만 해도 밑그림이었던 강아지 얼굴이 초록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아들이 읽는 책이 바뀌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어요. 바깥양반과 자꾸 맞딱뜨리면, 기왕 멈춘 차에 함께 할 일을 찾아요. 지난 보름 동안 날이 좋아 집 뒤뜰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을 함께 정리했어요. 글쎄, 바깥양반과 제가 호흡이 참 잘 맞더라고요.
어디 그 뿐인가요, 산책을 나가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무뚝뚝한 독일 사람들이 웃으면서 인사해요. 2미터 거리를 두고도 충분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우치고 있나 봐요. 바빠서 안부 묻지 못했던, 아니 그보다 혹시 바쁠까 연락하지 못했던, 아니 그것도 아니지, 연락해도 반가워하지 않을까 주저했던 사람들에게 툭 전화해도 다들 마치 기다리던 손님이 초인종 누른 듯 웃어요. 웃고 또 웃고, 오랜 시간 웃어요. 2미터 훌쩍 넘는 거리를 두고도 충분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우치고 있나 봐요. 산다는 것이, 이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을까 싶어요.
공부 오래 하신 분들이 병풍 같은 서가를 배경으로 폭신한 소파에 다리 꼬고 앉아 하시는 말씀은 새겨 들을 만 해요. 2020년 봄은 인류에게 분명 미증유의 위기에요. 한데요, 그 위기의 한가운데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직도 웃어요. 그 웃음이 2미터에 못 미치는 가족들에게, 2미터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2미터 훌쩍 넘은 거리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퍼지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그 어려운 일을 해 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