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두루마리 휴지 선반이 다시 찼어요(설명하기도 난감한데 휴지는 독일인들의 첫 번째 사재기 품목이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두 봉을 집어 들고 아내에게 전화하려다 집었던 두루마리 휴지를 다시 내려놓아야 했죠. 한 손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크기에 안면 인식 잠금이 걸린 아이폰을 열 수 없었거든요. 전화하기를 포기하고 마트 문을 나서는데 “안녕하세요”, 우리말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마스크, 비닐장갑에 모자까지 무장한 탓에 오로지 목소리와 눈매로만 뉘신지 알아봐야 했지요. iPhone 13은 홍채 인식 잠금장치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요? 아이폰 사용자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국가 기관에 불려 가 홍채를 등록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에요. 앞으로 서너 세대쯤 지나면,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 속눈썹이 긴 것과 같이, 인간의 소리 민감도가 높아질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그전에 얼굴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마스크가 개발된다면 필요 없을 테지만요.
세상이 달라지긴 할 모양이에요. 지구 반대편에서 코로나 브리핑을 가장한 선거 운동에 열을 올리는 노란 뚜껑 할아버지만 빼면 하나같이 COVID-19가 창궐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군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날리는 ‘경고’들을 기자들이 받아 화끈한 제목을 붙인 뒤 쏟아내요. 누구는 2차 세계 대전에 비유하기도 하고 대공황에 빗대기도 해요. 지금 있는 무엇인가가 자꾸 사라져 어떤 집은 망할 테고 또 다른 집은 흥한대요. 부자와 빈자만 남는 세상으로 치닫다 결국 인간 본성에 가장 가까운 경제 운용 방식이라 숭상해왔던 자본주의가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대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작년 봄, 여름과 가을로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대요. 지금보다 더 큰 화를 부를지 모른다고 아주 슬프거나 비장한 어조로 말해요. 편지함 뚜껑에 꽃가루가 소복하고 꿀벌이 집안까지 들어오며 민들레는 벌써 내년에 틔울 씨앗을 날리는데, 자꾸 세상이 슬프고 무섭게 변한대요. 인류의 미래를 예견한 소설, 영화 따위가 다루었던 비관 가득한 모습들이 총망라되어 불안이란 소실점으로 향해요. 마치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으로 이어지죠.
인간은, 다시, 적응해야 한대요.
한데 잠깐만요, 조금 불편해요. 마치 마부 몇이 짜잔 하고 나타나 깃발을 치켜들고 말을 몰면 인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 같아요. 어디선가 나타날 마부들을 뺀 사람들을 나머지로, 그러니까 역사와 시간의 객체로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말이죠. 자꾸 COVID-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경고하는데 인류는 단 한 번도 과거로 돌아간 일이 없어요. 부자와 빈자만 남는 세상이 되는 건 부자들이 더 참지 못해 억지로라도 나눌 거예요. 부자들은 늘 자신들의 부를 늘려 줄 ‘웬만큼 돈 있는 자들’이 필요하니까요. 자본주의가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면 누군가 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하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서 부는 바람이 다른 동네로 퍼져갈 거예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그 어느 시절에도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적응하지 않았거든요. 변화는 단어의 뉘앙스 상 누군가 이끄는 태풍처럼 보이지만 실은 늘 사람들의 필요와 욕심을 씨앗으로 자라났죠. 세상이 변한다면 이번에도 결국 나를 빼놓지는 않을 거예요.
“조심해, 너희들, 내 말 잘 들어봐, 그렇게 넋 놓고 살다 큰일 난다”고 떠드는 자들에게 조금만 진정하라 말하고 싶어요. 다행히 지난 봄보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조금 더 비옥하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더 맑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