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앞쪽이 길어 친정에 먼저 들렀다. 그리고 시댁에 가려고 이것저것 챙기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께 참기름 한 변 갖다 드려라.
그리고 송편 반죽 해놨으니 그것도 가져가서 떡 해 먹어."
"송편 반죽이요? 모시송편?"
"응. 모시잎. 맛있어."
결혼 전, 처음으로 시댁으로 인사를 갔을 때 어머님은 모시송편이라며 접시에 내주셨다.
"전라도서 자랐다고 해서 특별히 모시송편을 구했어."
어머님은 낭만적인 데가 있으셔서 나에게도 어릴 적 먹던 추억을 안겨주시고 싶으셨던 듯하다. 엄청 고심고심해서 그리고 어렵사리 구한 모시송편에 대해 기쁘게 설명하셨다.
모시잎.
여름을 한결 시원하고 상쾌하게 보내기 위해 옛 조상들이 만들어 입었던 모시옷, 그 옷의 재료인 모시가 맞다.
깻잎처럼 손바닥만 한 면적에 보송보송한(누군가는 거칠거칠하다고 느낄지도) 솜털이 난 녹색잎의 모시는, 한번 삶아내 꼭 물기를 짜낸 다음 잘 불린 흰쌀과 함께 방앗간에 가져가면 빻는 기계에 두서너 번 돌려준다. 그러고 나면 선명한 녹색의 반죽으로 재탄생했다.
친정에서는 쑥보다 이 모시잎으로 송편을 해 먹을 때가 많았다. 봄날 막 시작되는 농사일에 일일이 쑥을 캐기가 바빴고 조금 늦었다 싶으면 금세 웃자라 쓴 내가 났다.
반면 모시는 봄날 자라기 시작해서 딱히 돌보지 않아도 쑥쑥 잘 자랐고 잎의 면적도 넓어 몇 장 따다 보면 금세 바구니를 채울 수도 있어서 시성비가 좋았다.
사방이 녹음으로 우거진 친정에서는 모시는 아주 쉽사리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였다. 특히 친정집의 마당에도,길바닥에도, 집 건너 작은 땅뙈기에도 심지도 않은 모시는 쑥쑥 그렇게 솟아났다. 그렇게 익숙한 모시가 시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니 새삼 우리나라가 참 넓구나 싶었다.
결혼하고 몇 년 후 애를 낳아 어머님이 애들을 봐주기 위해 우리 집에서 몇 년을 같이 살았다. 그렇게 같이 살다 보니 점차 어머님과 편해지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친정집에 다녀오고, 어머님은 강릉집에 다녀오셔서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일요일 저녁, 신랑이 말했다.
“엄마, 처가 마당에도 모시잎이 있어. 엄청 많아.”
“엉? 정말?"
“저희집에는 모시잎이 사방에 ㅎㅎㅎ, 어머님 그거 엄청 힘들게 공수하셨다고 해서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엄청 웃었어요."
친정의 모시 반죽과 시댁의 알밤을 콜라보한 송편
시어머님을 처음 뵌 건 서울에서 있었던 어머님 친구 자제분의 결혼식에서였다.
어머님이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같이 결혼식에 오셨던 친구분을 데리고 오셔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인사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나와 신랑을 다급하게 부르셨다.
"이거 이거 꼭 가져가서 먹어."
어머님의 친구분께서 내민 것은 하얀 송편. 특이한 것은 송편 하나당 하나의 큰 알밤이 들어있다는 거다. 태어나서 알밤 송편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봤다.
그리고 이후 결혼하고부터는 매년 추석이면 알밤 송편을 먹게 되었다.
모양도 달랐는데, 친정에서는 반달 모양으로 빚는 반면 시댁에서는 감자떡처럼 뭉툭하게 빚어 두 개의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모양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