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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땐 같이 먹자, 떡볶이

내 인생 음식 <주전부리>편

by 땅꼼땅꼼


지난 주말, 작은 애가 친구의 초대로 교회에 갔다. 교회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이렇게 저렇게 모인 친구들과 교회 옆 놀이터에서 놀고 온다고 전화를 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줄곧 친구들과 어울리고 통화를 하는 작은 애와 달리 큰 애는 주말이 되면 내내 집에 칩거한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웹툰을 보고, 숙제도 하고.


"엄마 시장 갈 건데 같이 갈래?"

"응!"


시장에 가려면 작은 애가 놀고 있을 놀이터를 지나기 때문에 잘 있는지 어떤지 살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귀찮아할 줄 알았는데 큰 애는 단박에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엄마랑 커플이야."


뽀글이 잠바도, 야구 모자도. 색깔은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한 게 만족스러운가 보다. 그렇게 큰 애와의 시장 데이트를 시작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시장 가면 호떡을 사 먹자고 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집어드는 바람에 입안이 달았다(내가 아니라 딸이).


"떡볶이를 먹을까. 엄마가 떡볶이 잘하는 집 알아놨어, "

"그래, 좋아!"


(이미지) Pixabay


시장 안에는 네다섯 군데의 분식집이 있다. 거의 다 가봤는데 이 집이 소스도 그다지 맵지 않고, 무엇보다 손님이 많아 순환이 빨랐다. 내친김에 김말이와 오징어 튀김까지 주문해서 우리는 포장마차 테이블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이렇게 엄마랑 다니는 시간이 좋아요."


"좋기는 뭐가 좋아. 친구들이랑 다니는 게 좋지."


"친구들이랑 있으면 이상한 걸로 싸우고, 분위기 나빠지고.

최근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친구들끼리 싸우면서 내가 중간에 끼는 일이 있었거든. 나는 진짜 가만히 있었는데."


큰애는 무척이나 밝고 명랑한 아이다. 금 일찍 사춘기가 온 건지 작년 말부터는 그 밝음과 명랑함이 다소 숨죽였다.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던 것도 이제는 연락도 하나 안 하고 그저 학교에서 보는 게 전부인 모양.


그런 큰 애의 모습은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친구들 틈바구니에 잘 끼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 불러주면 같이 놀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혼자 지냈다. 홀로 지내는 게 그다지 외롭지 않았고 나름 괜찮았다.


"근데 가끔은 외로워."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장을 돌고, 더 나아가 만석공원까지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큰 애는 작게 읊조렸다.

친구들과 지내며 사소한 오해를 하고,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해야 하기에 이제는 차라리 혼자 지내겠다고 맘먹은 큰 애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씩 외로움과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느 쪽의 부등호가 더 클지는 큰 애만이 알 것.

나 역시 그 시절이 지났기에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지, 어쩌면 어릴 적 순간순간 외로움이 밀려들었을 테다.


"엄마가 매번 같이 할 순 없지만, 외로우면 이렇게 엄마랑 데이트도 하고, 떡볶이도 먹고 하자. 그러니 말해."


"알았어! 난 엄마와 떡볶이 먹는 거 진짜 진짜 좋아!"


떡을 싫어하는 신랑,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작은 애. 그렇기에 큰 애와 나는 떡볶이로 의기투합할 수 있다. 게다가 딱 적당히 맵고 달달한 떡볶이 집을 발견했으니 이제 우리의 데이트 코스!


무탈하게 잘 자라나 주길.

사춘기도 잘 건너가 주길.

외롭다 생각들 땐 엄마에게 손 내밀어 주길.



이날부터 계단 오르기에 동참한 큰 애


다니던 주짓수 수업에서 손가락을 다쳐 손가락 깁스를 하는 바람에 3주째 수업을 나가지 못하는 큰 애는, 떡볶이 데이트 후 나와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걷고 있는 계단 오르기에 함께하기로 한 것. 이날 24층에 이어 며칠 지난 이제는 45층까지. 계단을 걸으며 사이좋게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노래를 듣고 얘기를 하고, 가끔은 놀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큰 애와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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